새누리당 몸 담으면, 친박계는 반 총장 밀 듯
김무성 입지 흔들, 오세훈 후보군서 빠질 수도
야권서 출마하면 문재인·안철수 중도하차 가능성
충청 출신 안희정 기회, 손학규 유동성 커져 유리
[이데일리 선상원 기자] 정치권서 꾸준히 회자되던 ‘반기문 대망론’이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전날 제주포럼에 참석해 내년 대선 도전을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방한 이틀째인 26일 자신의 발언이 과잉, 확대됐다고 수위 조절에 나섰지만, ‘유엔 사무총장에서 돌아오면 국민으로서 역할을 더 생각해보겠다’고 한 대권 도전 발언을 거두지는 않았다. 임기 7개월을 남겨두고 대선 행보에 첫발을 뗀 셈이다.
이제 반 총장은 대선 정국에서 상수가 됐다. 현재 반 총장의 대선출마 시사를 가장 반기는 곳은 새누리당이다. 총선 참패로 대선 후보들의 지지도가 급락한 새누리당은 반 총장이 내년 대선에서 여당 후보로 나서주면 정권창출이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공개적인 구애에 나섰다. 정진석 원내대표와 홍문표 사무총장 대행, 나경원 외교통일위원장 등이 출동해 반 총장을 극진히 예우했다.
홍문표 사무총장 대행은 이날 SBS라디오 ‘한수진의 전망대’에 나와 “국내외적으로 대중적인 인기와 다양한 행정이라든지 사회적 경험이 있는 분으로서, 특히 우리가 존경할 부분은 보수적 가치를 상당히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저희 당으로서는 반기는 그런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비박계보다 친박계가 더 적극적이다. 물론 반 총장이 여당 후보로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적은 없다. 반 총장의 선택에 따라서는 집권 가능성이 커진 야당 후보로 참여할 수도 있다. 충청도를 기반으로 한 반 총장이 어느 한쪽에 발을 담그는 순간 여야의 대선 판도는 크게 출렁일 것으로 보인다.
우선 여당에서는 친박계의 대안으로 거론됐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유력 후보군에서 밀려날 수 있다. 친박계는 대구경북과 충청 연합인 반기문 대망론을 앞세워 반 총장을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로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비박계 대표 주자인 김무성 전 대표의 입지도 흔들릴 전망이다. 비박계 세력을 기반으로 경선에는 참여할 것으로 보이지만, 승리를 장담하기가 어렵다. 비박계 일부에서는 반기문 대망론에 대항하기 위해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남경필 경기지사나 원희룡 제주지사를 차출할 수도 있다.
다만 반 총장이 당내 경선서 혹독한 검증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무성계인 김성태 의원은 이날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나와 “외교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지금까지 명예롭게 일을 해오신 분이 이 험난한 정치에 과연 제대로 발 들이게 될 수 있을 것이지 일부에서 상당한 우려를 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전했다.
야당 후보들도 좌불안석이기는 마찬가지다. 반 총장에 경계감을 갖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충청 기반이 약한 안철수 공동대표는 당장 반 총장이 대권 경쟁에 뛰어들면 지지도 하락을 면할 수 없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의미이다. 당내에서 반 총장 대항마를 새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 수 있다. 또 반 총장이 야당 후보로 출마하면 유력한 대선 후보인 문 전 대표와 안 대표가 중도하차 해야 할 수도 있다. 안 대표는 이날 의원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반 총장 대선 출마에 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생각할 게 많다는 얘기이다.
반면 ‘불펜 투수론’을 언급하며 대권 도전의 애드벌룬을 띄운 안희정 충남지사에게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당내에서 반 총장에 대한 맞춤형 카드로 안 지사를 주목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안 지사에게는 충청권 대망론에다 세대교체라는 명분도 있다.
정계복귀를 저울질하고 있는 손학규 전 대표도 반 총장의 등장이 나쁠 게 없다. 정치권의 유동성이 커지면 손 전 대표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반 총장의 선택에 따라 여야와 대선 후보들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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