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러시아의 중고거래 및 구인구직 플랫폼인 ‘아비토’에는 이같은 내용의 구인 공고가 게재됐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건설업체가 올린 게시물로, 돈바스 지역 재건을 위한 근로자를 8만 7000명 이상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근무 현장까지 왕복 비용은 회사가 부담하고, 이외 작업복, 숙소, 건강보험, 식비, 주유비, 주차비, 출퇴근 교통편 등의 추가 혜택을 제공한다고 명시했다. 특이한 점은 구인 대상이 ‘45세 이상, 건강상 문제가 있는 자’라는 점이었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는 14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 재건을 내세워 타지키스탄,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몰도바, 키르기스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벨라루스 등 옛 소련 국가 출신 이주 노동자들을 끌어모은 뒤 우크라이나 전쟁 최전선으로 보내 강제 노동을 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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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현재 기업 중 85%가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러시아 경제에 필요한 신규 근로자는 230만명으로 추산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다수 젊은이들이 전장으로 끌려갔거나 이를 피해 해외로 도주했기 때문이다. 이에 러시아는 군 복무를 비롯한 다양한 부문에서 해외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올해 외국인들이 군 복무를 하면 러시아 시민권을 보다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 서명하기도 했다.
구인 공고에 명시된 도네츠크·루한스크·마리우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빼앗은 점령지다. 러시아는 점령 직후부터 이들 지역을 자국 영토로 편입시키기 위한 작업을 추진해 왔다. 러시아어와 러시아 화폐 사용을 의무화하고, 정치·행정 시스템은 물론 방송이나 교육도 러시아 체제로 서둘러 전환하는 등 실효지배를 강화했다.
현재는 재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말 약 1000만명의 이민자가 자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으며, 올해 1월 31일 연설에서는 연간 1조루블(약 14조 5900억원)을 지출하고 있다면서 점령지 재건 노력은 “국가의 최우선 사항”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주 노동자들이 최전선에서 러시아군의 감시를 받으며 지뢰를 제거하거나 참호를 건설하는 등 구인 공고와 전혀 다른 내용의 작업을 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아울러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덧붙였다.
인권보호 비영리단체인 ‘통 자호니’의 이사이자 인권 변호사인 발렌티나 추피크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이민자 약 50명이 우크라이나 건설 현장에서 일했었다면서 “약속된 급여는 물론 러시아로 되돌아가는 비용도 지급되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 및 타지키스탄 출신 이민자들은 (업체들에) 속아서 무보수로 일하고 최전선에서 참호를 파도록 강요받은 사례도 많았다”고 전했다.
러시아 정보업체인 비코텐더에 따르면 지난해 마리우폴에서는 주거용 및 행정 건물 건설, 인프라 공사를 위한 20억루블(약 292억원) 이상의 프로젝트 47건에 대한 입찰이 진행됐다. 이들 업체 대부분은 러시아 국방부와 계약을 맺고 있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관련된 모든 정보와 작업이 기밀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러시아를 떠난 세르게이 크라브리크는 “나를 포함해 약 2000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구인 공고에 속아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일했다. 하지만 내가 속했던 회사는 러시아 국방부와 방산 계약을 체결하고 있어 소송을 제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주 노동자들이 자국으로 돌아갔을 때 현지법을 위반하게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1년 동안 점령지에서 일했던 노동자 상당수가 러시아 편에 서서 전쟁에 참여한 혐의로 짧게는 2년부터 길게는 10년까지 징역형을 받았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추피크 변호사는 “관련 사실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점령지 해방을 목표로 우크라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한 단체는 지난해 11월 기준 중앙아시아 출신 이주민 10만명이 이상이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건설 노동자 등으로 근무하는 것으로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