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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금통위는 포위돼 있다. 첫째 포위망은 ‘자본이동자유화’이다. 자본이동이 자유화되면 환율정책으로부터 독립된 금리정책은 불가능하다. 이를 3불공존(三不共存, Impossible Trinity)원칙이라 한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많이 개입할수록, 금리정책이 설 땅은 줄어든다. 삼불공존 포위망에서 뛰쳐나와 금리정책의 독자성을 갖는 길은 두 가지 중 하나밖에 없다. 하나는 자본이동을 대폭 규제하는 길이다. 또 하나는 외환시장개입을 모피아가 하지 않도록 제도화하여 환율정책과 금리정책을 모두 한국은행에 맡기는 방법이다.
한은을 가둔 두 번째 포위망은 모피아가 주도하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이다. 특히, 과거 재무부 이재국을 옮겨놓은 금융위원회는 다른 나라에 없는 괴물조직이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붙여놓은 자동차를 상상하면 된다. 2008년 2차 외환위기 하에서 ‘적기시정조치’라는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기업구조조정 지연 등으로 부실규모만 키우고 결국 경제난국을 1997년위기보다 장기화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금융감독을 제대로 하는 역할을 금융위는 할 수 없다. 어떻게 가속페달이 브레이크 역할을 하겠는가? 그런 정부조직은 한시 바삐 없어져야 한다. 금융위를 없애고 금융감독원 내부에 금융감독위원회를 두는 ‘국가 대개조’가 필요하다. 기재부 차관의 열석발언권도 없애야 한다.
한은에 대한 세 번째 포위망은 ‘토건재벌’이다. 거품을 유지하려는 재벌들은 항상 한국은행에게 저금리를 요구한다. 토건재벌은 정부에도 압력을 행사하여 수십차에 걸친 부동산시장 부양책을 받아냈다. 부동산시장 거래를 활성화하는 길은 거품부터 빼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권력은 무리한 독약 처방만 강요하고 있다. LTV(주택담보대출비율)를 70%로 높이겠다는 정책발상이 나오는 것이 독약처방의 한 예이다. 전세보증금이 매매가의 70%인데, 주택담보로 대출을 70% 받는다면 주택 소유자는 집값의 최대 140%까지 전세와 대출 두가지로 자금을 확보하게 한다는 발상에 기가막힌다. 영국, 미국 등에서는 주택담보대출규제가 바로 중앙은행의 몫이다. 타국 중앙은행에 비해 한국은행의 처지가 얼마나 옹색한가?
이처럼 한국은행 금통위는 겹겹이 포위되었다. 외국자본, 정치권력과 모피아, 토건재벌의 포위망은 견고하다. 누가 한국은행 총재가 되고 금통위원이 되어도 포위망을 뚫기가 어렵다. 자본이동규제, 환율정책과 금리정책 주체의 통합, 금융위 해체, 금융감독기구 독립, 한국은행에 금융안정 정책수단 부여, 거품투기세력으로부터 독립된 강한 정부, 이런 모든 ‘국가경제 대개조’가 일어나야 한국은행은 포위된 감옥에서 나와 독립된 금융통화정책 결정을 할 수 있다.
20년전 성수대교 붕괴뒤의 졸속 ‘세계화’는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하고 모피아 전성시대를 가져왔다. 20년이 흐른 뒤 세월호 참극 이후의 진정성이 없는 ‘국가대개조’는 어떤 참극을 가져올까? 한국경제의 상황이 이토록 엄중한데, 이주열 총재가 말하는 ‘조화론’은 얼마나 생뚱맞은가? 중앙은행 포위세력과 ‘조화’의 구실을 찾다니 너무 무책임한 모습이다.
<김태동 교수 이력> 1969년 한국은행 입행, 1998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1999년 성균관대 경제학부 경제학 전공 교수,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2000년 제10대 한국금융학회 회장, 2002~2006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現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