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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가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 또한 죄악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고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울먹이자 5·18 유족과 피해자들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5·18 유족인 김길자 여사는 주머니에서 꺼낸 메모지를 들고 “큰 용기를 내 여기까지 와서 감사하다”며 “광주에 처음으로 온 걸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5·18 당시 고등학생 시민군으로 항쟁에 뛰어들었다가 사망한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다.
발언 내내 눈물을 훔친 김 여사는 “전씨가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광주를 제2의 고향처럼 생각해달라. 차분히 얽힌 실타래를 함께 풀어가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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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 사과를 계기로 5·18 가해자들의 사죄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이어졌다.
정성국 5·18 공로자회장은 “할아버지의 잘못을 대신 사죄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광주를 방문한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며 “전씨의 뒤를 이어 다른 일가족들도 5·18 이후 43년이 지난 만큼 이제는 용기를 내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5·18 유족 측 한 관계자는 “전씨가 끝까지 노력해주면 좋겠다”며 “전두환이 죽고 나서 많은 가해자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데 많은 양심 고백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씨와 유족들의 만남을 지켜본 한 광주 시민 A씨는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런 날도 온다”며 “죽은 자는 말이 없어도 망자의 영들이 다 보고 있을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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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전씨는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 묘지로 이동해 5·18 최초 희생자인 김경철 열사와 공식 사망자 중 가장 어린 전재수군(당시 11세), 고등학생 시민군이었던 문재학 열사의 묘소를 참배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전씨는 김 열사와 전군, 문 열사의 묘소에서 묵념했다. 전씨가 입고 온 검은 코트를 벗어 묘비석을 닦자 한 시민이 흰 수건을 건넸지만, 그는 “괜찮다”며 본인의 옷으로 묘비석을 닦았다.
전씨가 묵념을 마치자 김 여사는 “광주로 올 때 얼마나 마음속으로 두려웠냐”며 “그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 와서 사과한다니 마음이 풀린다. 위로 받았다”고 말했다.
전씨는 필요하다면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와 5·18 기념식 등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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