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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은 2022년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제재 일환으로 럭셔리 상품 수출을 금지했다. 수출 금지 품목엔 5만유로가 넘는 고급 자동차도 포함됐다. 하지만 FT는 러시아의 차량 광고 웹사이트(Auto.ru)에서 독일 자동차 딜러십 25곳에서 판매하는 50대 이상의 럭셔리 자동차가 확인됐다고 전했다. FT는 또 제재 대상에 포함된 고급 자동차를 밀수하는 러시아 업체 5곳을 파악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수입업체들은 평균 1만 9000유로(약 2910만원)의 마진을 붙여 차량을 밀수했다. 예를 들어 러시아 수입업체 애브토임포트(AvtoImport)는 이달 중순 웹사이트에서 독일 판매업체 아우토파트너 BGL의 게시글을 인용해 BMW 530 d M 스포츠를 720만 70루블(약 9375만원)에 판매한다고 광고했다. 아우토파트너 BGL 웹사이트에서는 3만 1900유로(약 4885만원)에 판매중인 제품이었다.
아우토파트너 BGL 측은 “러시아에서 진행되는 광고는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다”며 FT가 확인한 시점까지 차량은 팔리지 않아 독일에 있었다.
그동안 유럽에서 생산된 고급 차량이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제3국을 통해 러시아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는데,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실제 FT가 올해 1월 독일 자동차 딜러 케슬러 운트 하그가 키르기스스탄 택시회사에 판매한 검은섹 메르세데스-벤츠 S350 모델을 추적한 결과, 해당 차량이 올해 3월 모스크바 택시회사에 최종 등록된 것이 확인됐다.
케슬러 운트 하그의 아서 케슬러 대표는 “구매하는 사람, 지불하는 사람, 수출하는 사람이 있고, 이들은 수출 서류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이를 확인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나는 판매한 차량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저 내 사업을 운영하며 권리와 의무를 준수하고 싶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독일 차량 판매업체 그루마 아우토모빌레가 올해 9월 벨라루스로 수출한 메르세데스-벤츠 E220D도 얼마 뒤 러시아에서 포착됐다. 이 회사의 영업 책임자인 미셸 비베거는 러시아에 차량을 판매한 사실을 부인하며 “우리는 금수조치를 받은 국가에 있는 회사, 조직 또는 개인과 어떠한 거래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결국 EU는 지난 7월 벨라루스에 대한 사치품 수출 제한을 강화했다. 제재가 강화되기 전까지 벨라루스는 러시아가 유럽산 차량을 밀수할 때 세 번째로 많이 이용한 국가다. 하지만 제재 강화에도 여전히 밀수는 성행하고 있으며, 밀수에 더 길고 더 비싼 경로를 이용되고 있을 뿐이라고 FT는 지적했다.
잠재적 구매자로 위장한 애브토임포트의 한 담당자는 “유럽에서 러시아로 자동차를 수출하는 게 엄청나게 어려워졌다”며 “최근엔 벨라루스를 경유하지 않고 튀르키예, 조지아를 거쳐 러시아로 차량을 운송한다”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또 “최근에는 발트해나 벨라루스를 통하는 것보다 한국을 통해 고급 독일 자동차를 밀수하는 게 더 저렴하다. 한국은 러시아에 대해 최소한의 제재만 가했다”며 “온보드 시스템을 한국어에서 러시아어로 전환하는 데 약 3만루블(약 39만원)의 비용밖에 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