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열린 '여자 잡스' 첫 재판…방청석엔 올블랙 차림 여성들

김보겸 기자I 2021.09.09 16:54:14

'사기 혐의'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
12개 혐의로 기소된 지 3년만에 첫 재판 열려
"돈 벌려고 사기 쳐" vs "실패는 죄가 아냐"

엘리자베스 홈스가 8일(현지시간) 열린 자신의 재판에 참석하고 있다(사진=AFP)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사기 혐의로 징역 20년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인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37)의 첫 재판이 8일(현지시간) 열렸다. 홈스는 “피 한 방울로 암 등 질병 260여개를 진단 키트를 개발했다”고 주장해 ‘제2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기도 했지만 실제로 진단할 수 있는 질병은 10여가지에 불과해 희대의 사기꾼으로 내몰렸다.

미국 실리콘밸리 역사상 가장 큰 사기극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방청석에선 홈스가 ‘여자 잡스’라는 별명을 얻는 데 일조했던 올블랙 차림을 한 여성 3명이 눈에 띄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홈스의 첫 재판이 열리기까지는 3년이 넘게 걸렸다. 검찰이 그를 사기 및 사기 공모 등 12개 혐의로 기소한 건 지난 2018년이었지만 2020년으로 예정된 첫 재판은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올해 7월로 밀렸다. 하지만 이마저도 홈스의 출산과 맞물리면서 9월이 되어서야 재판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홈스의 첫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사진=AFP)
이날 캘리포니아 산호세 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검찰과 홈스 측은 고의성 여부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검찰은 “이 사건은 돈을 벌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친 것”이라며 “투자자들을 속여 홈스는 억만장자가 됐다”고 주장했다.

근거로는 홈스가 투자자들에게 제약회사 화이자를 사칭해 테라노스를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보고서를 만들어 보여줬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수백만달러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검사 결과와 회사 수익 등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부풀렸다고도 했다.

홈스 측은 “실패한 건 죄가 아니다”며 방어에 나섰다. 투자자들에게 한 약속은 진짜였지만 현실화하는 데 실패한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홈스의 변호인은 “홈스는 임상팀의 연구에 기초해 테스트가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다고 믿었다”며 “그는 테라노스를 성공시키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했으며 진심으로 그것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다”고 반박했다.

또한 테라노스 투자자들은 회사의 위험과 한계를 미리 알고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홈스 변호인은 “그들은 기술회사에 투자하고 싶어했고 이윤의 잠재력이 위험보다 크다고 판단했다”고 변호했다.

투자자들을 속여 부당하게 이득을 취했다는 검찰 측 주장에도 선을 그었다. 2014년 테라노스의 기업가치가 90억달러(약 10조5000억원)까지 치솟아 지분 절반을 보유한 홈스의 순자산이 45억달러에 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주식을 팔아 현금화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홈스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유죄가 확정되면 최고 징역 20년형에 처해진다. 법조계에선 유죄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의료사업에서 사기 행각을 일삼은데다 범죄를 입증할 증거가 많다는 이유다.

테라노스 사기 사건을 계기로 남을 속이고 훔쳐서라도 성공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실리콘밸리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재판은 9일(현지시간) 재개된다.

한편 홈스는 천억원대의 최고급 주택에서 초호화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날 CNBC는 홈스가 물가 높기로 유명한 실리콘밸리에서도 부촌인 그린게이블스에서 약 1570억원가량의 고급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사실은 홈스의 배우자인 윌리엄 에반스가 차량에 번호판을 붙이지 않은 탓에 거주지가 적힌 교통위반 딱지를 받으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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