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들은 현재 진행 중인 신약 과제들을 다시 한번 꼼꼼히 들여다보는 등 글로벌 시장 진출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 분위기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또 다른 업체의 오너는 연구·개발부문 임원들을 모아놓고 “그동안 허위·거짓 보고로 R&D 성과를 부풀린 것 아니냐”라며 기존 연구 노력을 무시하고 연구원들을 불신하는 듯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경쟁업체의 경사를 부러워하면서도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실 지난해까지 한미약품이 국내외 시장에서 특출난 성과를 낸 것도 아니었다. 한미약품의 왕성한 R&D 투자가 신약 성과의 밑거름으로 평가받지만 이 회사는 지난 2007년에서야 처음으로 매출 대비 R&D 투자비율이 10%를 넘었다.
상당수 상위 제약사들도 10% 안팎의 R&D 투자를 하고 있어 단순히 투자금액의 간격이 희비를 엇갈리게 했다고 보기 힘들다. 한미약품 연구원들의 역량이 다른 업체보다 뛰어나다고 보기도 어렵다.
물론 결과론이지만 한미약품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제품을 적기에 만들어내는 시장형 R&D 투자 전략이 주효했다. 많은 제약사들이 이미 남들이 만들어낸 약과 유사한 약을 개발하는데 상당한 역량을 쏟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무엇보다 연구 현장에서는 연구원들이 실패를 걱정하지 않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도 많은 오너들은 ‘시키면 하도록 만드는’ 상명하달식 경영철학을 버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심지어 일부 업체는 연구를 실패한 연구원들에 반성문을 쓰라고 지시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구원들은 거액이 들어가는 연구를 스스로 외면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경영진으로부터 문책받을 것을 우려해 실패를 보고하지 않거나 현재 개발 중인 과제가 시장성이 높지 않은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누구도 R&D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는 악순환도 반복된다. 단지 대외 과시용으로 ‘올해 목표 15%’와 같이 일정 수준의 매출 대비 R&D 비율을 목표로 세우는 업체도 있다. 마케팅 부서가 잘 팔리는 제품을 빨리 내놓지 않는다고 재촉하는 등 연구소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신약 개발은 장기간의 시간과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오너가 직접 주도하고 결과도 책임져야 한다. 한미약품은 임성기 회장이 모든 R&D 과제를 직접 주도했다. 심지어 다국적제약사와의 수출 계약 협상도 임 회장이 총괄 지휘했다. 특히 연구 실패에 대해 실무진들에 책임을 묻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너가 연구 실패의 책임을 실무진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하고 경직된 조직문화가 개선되지 않으면 제 2, 3의 한미약품의 등장은 요원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