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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미국내 기업들에 대한 법인세율을 낮추는 대신 해외에서 번 돈과 역외에 쌓아둔 현금에 대해서는 처음으로 세금을 매기는 등 버락 오바마표 법인세 체계 개편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2016회계연도(2016년 10월~2017년 9월)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법인세율 35%를 낮추는 대신 해외로 줄줄 새는 구멍난 과세 체계를 재정비하고자 했다. 이같은 예산안은 2일 의회에 제출한다.
이번 예산안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주시한 것은 세금 한 푼 내지 않은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의 해외 소득과 유보금 등이다. 애플의 1분기(작년 10~12월) 보고서에 따르면 현금 및 유가증권은 전체 1780억달러인데 이중 89%인 1580억달러가 해외에 쌓여있다. 애플 뿐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미국내로 갖고 오지 않고 있다. 이 액수가 지난 2013년 기준으로 2조1190억달러에 달한다.
현재 과세체계에선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도 미국내에서 한꺼번에 법인세로 거두는데 기업이 번 소득을 미국으로 가져오지 않을 경우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허점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기업이 해외 이익에 대해 딱 한 번에 한해 14%의 세율을 적용키로 했다. 그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8%(제조업체 25%)로 하향 조정하길 원한다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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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2380억달러의 세수가 충당될 것으로 예측됐다. 또 그 뒤에 벌어들인 해외 이익은 미국으로 들여오든지 관계없이 19%의 세율이 부과된다. 10년간 5650억달러가 거둬질 전망이다. 미국 기업의 해외 이익을 이전하기 어렵게 만드는 추가 조치도 수반된다.
기업의 해외 이익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은 국제유가 급락에 유류세 수입이 줄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고속도로, 교량 등 인프라 펀드에 자금이 부족해질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여기엔 6년간 4780억달러가 소요된다. 박서와 바울의 법안은 인프라 재정을 메우는 데 초점이 맞춰진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구멍난 과세 체계를 보완하는데 더 중점을 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글로벌 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뜻은 같다.
기업들이 역외 현금을 미국으로 들여올 경우 5년간 일회성으로 35%의 세율을 6.5%까지 내려주자는 법안을 민주당 랜드 바울 의원과 함께 발의한 미 상원 바바라 박서(공화당) 의원도 “해외 이익에서 수 천억달러가 들어올 것”이라며 “미국에서 투자가 늘고,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 입장에선 이는 세금 인상과 다름 없어 조세저항이 예상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오바마의 제안은 아일랜드, 버뮤다 등 조세피난처로 이동한 기술 및 의약품 분야의 기업들의 세금 증가를 의미한다고 보도했다. 조세피난처엔 세금이 이미 없거나 10% 미만이기 때문이다.
MS는 해외에 929억달러를 쌓아두고 있지만, 이를 미국내로 가져오면 296억달러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MS가 해외에 낸 세금 3.1%를 공제받아 31.9%의 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법인세율이 35%에서 28%나 25%로 하향 조정되더라도 현재보단 세금 부담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미국 제조업자협회(NAM)는 “인프라 펀드에 재정을 메워야 한다는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단편적으로 미국 글로벌 기업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는 것은 세금 체계를 변화시키는 방법이 아니다”고 밝혔다. 건설 장비제조업체인 테렉스의 로널드 디피오 최고경영자(CEO)는 “우리에게 세계적으로 경쟁력있는 세제를 달라”고 말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2004년 비슷한 세금 감면방안이 실패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반대하고 있다. 기업들의 유보금이 미국 내로 들어올 것으로 기대하지만, 들어오더라도 투자나 일자리 창출이 아닌 대부분 자사주 매입 등에 쓰일 것이란 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