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민정 기자] 중국이 유가 급락으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산유국들에 대한 금융 지원을 확대하면서 세계 경제에서 국제통화기금(IMF)를 대체할 수 있는 최종대출자(last resort) 지위를 굳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통화 폭락으로 지난 1998년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까지 맞았던 경제 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러시아와 지난 20일 통화스왑 규모를 240억달러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10월부터 남미 산유국인 아르헨티나에 23억달러를 통화스왑 형태로 융자해주고 있다. 지난달에는 베네수엘라에 40억달러를 대출해줬다. 중국 외화 보유액은 세계 최대인 3조8900억달러로 집계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3일(현지시간) 중국이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산유국들, 특히 미국과 관계가 썩 좋지 못한 국가들에 대한 통화스왑, 대출 등 금융지원에 공세적으로 나서면서 글로벌 경제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동시에 금융위기를 겪는 국가들이 전통적으로 돈을 빌리러 갔던 IMF의 최종 대출자 역할을 위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크림반도 합병 등을 둘러싼 러시아와 대립에서 미국의 지지를 받는 우크라이나는 IMF로부터 17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은 반면 러시아를 비롯한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는 미국이나 유럽과 사이가 좋지 못하면서 IMF 구제금융 접근이 어렵다. 이 기회를 틈타 중국이 이들 국가에 손을 내밀면서 최종대출자 지위를 굳히고 있다고 통신은 분석했다.
특히 IMF는 돈을 빌려주는 대신 대출 상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각종 강도높은 경제구조 개혁을 요구하는 반면 중국은 금융위기를 겪는 국가들의 자원을 확보하는데 관심이 있기 때문에 돈을 빌리는 입장에서도 부담이 덜한 이점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스티븐 레이올드 스톤하버인베스트먼트 이코노미스트는 “몇몇 국가들이 현재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중국이 도움을 주고 있다”며 “중국은 그렇게 하면서 선행을 베푼다는 모양새를 취하는 한편 국제사회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위안화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텐 버크 글로벌 에볼루션 A/S 최고투자전문가는“중국 입장에서는 에너지 부국인 이들의 자원 확보가 대출의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가 하락에 직격타를 맞은 베네수엘라는 지난달 자국 외환보유액이 11년 만에 최저치로 주저 앉자 중국으로부터 40억달러를 대출받아 현재 내년과 내후년 채무를 갚을 수준인 21억달러 규모로 외환보유액을 늘린 상태다. 중국은 지난 2007년부터 47억달러를 빌려주며 현재 베네수엘라의 최대 채권자로 올라섰다.
지난 2001년 디폴트 사태를 맞은 이후로 국제사회에서 돈 빌리기가 힘들어진 아르헨티나에게도 중국은 구세주다. 3년 만기 통화스왑 계약에 따라 10월부터 현재까지 23억달러를 대출 받았다.
현재 중국과 통화스왑을 체결한 나라는 28개국에 이른다. 위안화 거래를 늘리면서 위안화를 궁극적으로 글로벌 경제금융 거래에서 달러화를 대체할 통화로 만들려는 목적이라고 통신은 분석했다. 로저글로벌파트너스의 마이클 칸스케는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눈에 띄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영향력 확대에 대한 의지도 강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