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68)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공연 ‘김덕수전(傳)’을 앞두고 쑥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주최 측에서 정한 공연 제목을 들었을 때 어깨가 무거운 중압감을 느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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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김덕수가 다섯 살 때인 1957년 아버지가 있던 남사당의 새미(무동)로 데뷔하며 연희에 입문한 뒤 낭랑악단, 한국민속가무악예술단을 거쳐 사물놀이를 탄생시키고 전 세계를 누비며 활동해온 예인으로서의 여정을 압축해 선보인다. 김덕수는 “나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마당에서 으뜸간다는 광대의 삶이 시대와 함께 한다는 이야기이도 하다”고 설명했다.
김덕수가 생각하는 광대는 서민과 함께 웃고 우는 예인이다. 그는 “광대와 예인의 기준은 시대와 역사에 따라 늘 바뀌어 왔다”며 “서양문화가 유입되면서 남사당패와 광대 등이 점점 잊히고 있지만 그럼에도 해외에서는 언제나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이 풍물이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사물놀이였다”고 말했다.
김덕수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사물놀이다. 풍물 중에서 징, 장구, 꽹과리, 북으로 만든 사물놀이는 1978년 2월 20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공간사랑에서 김용배,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이 함께 한 공연을 그 시초로 여긴다. 이번 공연에서는 1부 말미에 바로 이 역사적인 첫 사물놀이 무대를 재현해 선보인다.
김덕수는 “원조 사물놀이로 실과 바늘처럼 지냈던 친구들과 10년도 안 돼 헤어졌고 그 중에는 먼저 떠나보낸 친구도 있다”며 “43년이나 지난 1978년 2월 20일을 돌아보며 독백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마치 고해성사 같아 무척 어렵게 느껴진다”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로는 1978년 첫 사물놀이 공연과 함께 1990년과 1998년 평양에서 가졌던 두 차례의 북한 공연, 1987년 6월 항쟁 이후 고 이한열에 대한 진혼 춤으로 선보였던 ‘바람맞이’를 꼽았다. 김덕수는 “특히 평양 공연은 핏줄이 같으면 우리의 신명은 통한다는 것을 알게 해줬기에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덕수의 꿈은 사물놀이가 세계적인 문화로 자리잡는 것이다. 그는 “과거 서양 선교사들이 서양 악기를 들고 올 때도 타악기가 가장 먼저였던 것처럼 사물놀이도 한류 문화로 진정한 세계화를 이루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우리 후학들이 전 세계로 나아가 대우를 받으며 안정적인 예인으로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데 매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덕수전’은 오는 28일부터 3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세종문화회관 기획공연 ‘그레이트 아티스트’ 시리즈 일환으로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공동으로 주최한다. 코로나19로 지친 관객들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무료 관람으로 진행한다. 오는 18일 오후 2시부터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에서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는다. 29일 오후 7시 30분에는 네이버 V라이브로 생중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