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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평·폐쇄적"…금융지주 '부회장'직 존폐기로

서대웅 기자I 2023.12.12 17:32:34

자회사 CEO 임기만료 후 부회장으로
이후 지주 이사진과 접촉 기회 늘려
'주인' 없는데 승계작업 불공평 판단

[이데일리 서대웅 기자] 디지털·글로벌 등 사업부문의 ‘책임경영’ 강화 취지로 속속 도입한 금융지주 ‘부회장’ 직제가 존폐기로에 섰다. 금융당국이 지주회장 승계가 불공평하고 폐쇄적으로 이뤄지는 요인 중 하나로 부회장직을 거론하면서다. ‘주인 없는 회사’인 금융지주가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등 ‘기울어진 운동장’ 조건에서 최고경영자(CEO) 승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당국 시각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금융감독원은 12일 공개한 ‘은행지주·은행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에서 현행 CEO 선임 및 경영승계 문제점 중 하나로 지주 부회장직을 꼽았다. 부회장에겐 역량개발 기회는 물론 이사회 참석, 워크숍 등 이사진과의 다양한 접촉 기회를 제공하는 반면, 외부후보는 쇼트리스트(최종 후보군) 확정 후에야 차기 CEO 후보임을 통지하는 점이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이복현(사진) 금감원장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이사회 의장단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부회장직 제도가 폐쇄적으로 운영돼 시대정신에 필요한 신인 발탁, 외부 경쟁자 물색 차단 등 부작용이 있다”고 했다.

금융지주 부회장직은 지주 산하의 여러 사업부문을 묶어 부회장 중심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하나금융지주(086790)는 2008년 초, KB금융(105560)은 2020년 말 신설해 지금까지 운영 중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부회장이 사실상 차기 회장 후보로서 ‘경영 수업’을 받기 위한 과정이 됐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부회장에 오른 인사는 자연스럽게 차기 회장 후보군으로 분류된다”고 했다.

또 과거엔 은행 등 핵심 자회사 CEO들이 부회장을 겸직하는 식으로 운영된 반면 최근엔 자회사 CEO 임기를 마친 후 부회장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연말 연초 부회장직을 두지 않은 지주사들이 조직개편 시 해당 직제를 신설할지를 주목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또 다른 지주 관계자는 “임기 만료 후 외부로 빠지는 것보다 내부에 있어야 회장 후보로 힘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외부에 나가면 차기 회장 후보로서 공평한 기회를 받지 못한다는 금감원 인식과 같은 맥락이다. “부회장이 신설되면 사실상 옥상옥이나 다름없다”는 반응도 나왔다.

KB금융과 하나지주가 조만간 단행할 조직개편에서 부회장직을 폐지할지 주목된다. 은행권에선 금감원이 강하게 비판한 만큼 직제를 없앨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두 지주사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금감원은 다만 부회장직 폐지를 답으로 정하진 않았다. 금감원이 이날 모범관행 30가지 원칙 중 하나로 제시한 것은 외부후보에게도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라는 것이다. 내부 후보에 부회장직을 부여해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 외부 후보자에게 비상근 직위를 부여하거나 역량개발 프로그램 참여 등을 통해 이사회와의 접촉 기회를 제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주인 없는 회사의 차기 CEO 후보 육성 시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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