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쉬운 이해를 위해 바리스타와 로스터를 연극에 빗대어 보겠다. 바리스타가 완성된 원두(각본)를 가지고 고객(관객)들에게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는 배우라면, 로스터는 생두의 특징을 파악하고 생두를 라이트, 미디엄, 다크 등의 적절한 포인트로 볶아 싱글오리진, 블렌딩 등 다양한 원두로 표현해 내는 연출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필자가 커피 회사에 입사한 1998년 당시만해도 로스터나 바리스타라는 세분화된 직업은 전무했다. 식품공학을 전공한데다, 회사 전 직원이 당시로선 생소한 원두커피 연구에 몰두해 있어 로스팅은 물론 커피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가 필수였다.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커피 문화가 상당 수준 발전해있던 터라 커피 공부를 위해 일본어 공부부터 시작했다.
이후 일본 유명 커피전문점들을 수소문했고 마침내 일본 이바라키 현의 특산품으로 유명한 ‘사자커피’의 사장을 찾아갔다. 사자커피의 커피 생산 라인을 들여다보며, 로스터가 단순히 커피 콩을 볶는 작업뿐만 아니라 생두 선별 작업부터 품질 관리까지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필자가 속한 쟈뎅이나 사자커피와 같은 커피 제조기업 내에서 로스터는 제품 개발뿐만 아니라 수입할 생두를 선적 전에 미리 테스트 한다. 또한 생두 수확 기간 동안 직접 산지를 방문해 사용하고 있는 생두가 잘 가공되고 관리되는지 확인한다.
산지에서 새로운 커피를 찾아 다니는 생두 바이어 역할도 로스터의 몫이다. 로스터라는 직업은 각기 다른 생두의 특성을 파악하고 고유의 매력을 이끌어내는 연출자로서, 생두가 맛있는 커피로 탄생하는 과정을 완성한다. 고품질 생두일지라도 적절하게 로스팅하지 않으면 커피 특유의 맛과 향을 얻을 수 없다. 로스팅이 충분히 진행되지 못하면 풋내나 콩 비린내 혹은 풀 냄새 같은 향이 난다.
반면에 필요 이상으로 열이 가해졌을 때는 숯의 탄내가 커피를 지배하게 된다. 로스터의 역할은 수 차례의 테스트와 로스팅을 통해 잘 재배된 생두 고유의 향미를 100%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농장에서 긴 시간 정성껏 가공된 생두는 가치를 잃게 된다.
로스터는 커피 제조의 시작 단계부터 참여해 커피 고유의 향미를 만들어내는 연출자로서 그 역할의 가치가 크다. 향후 커피 로스팅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해짐과 함께 로스터라는 직업에 대한 관심도 더욱 커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