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진우 기자] 남북이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놓고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이산가족상봉이 남북관계 개선의 첫 단추’라고 의미를 부여했던 정부는 물론, 북한 역시 상봉 행사를 향후 남북관계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판단하고 물러설 수 없는 대결에 돌입한 형국이다. 최악의 경우 상봉 행사가 파행을 빚어 남북관계가 오랜 기간 얼어붙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남북은 14일 판문점에서 2차 고위급 접촉을 갖고 담판을 시도한다.
◇정부 “상봉행사와 군사훈련 연계 불가”
남북이 12일 열린 고위급 접촉에서 합의문을 발표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상봉 행사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연계하려는 북측과 연계불가 원칙을 고수한 남측이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는 20~25일 열리는 상봉 행사는 24일부터 시작하는 ‘키 리졸브’와 일정이 이틀 겹친다. 정부 당국자는 13일 “북한이 상봉 행사와 군사훈련을 연계시켜 훈련을 상봉 이후로 하라고 계속 주장을 했다”며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정부는 상봉 행사는 인도주의적인 문제로 연례적인 한미군사훈련과 연계할 수 없고, 북한이 작년 추석을 나흘 앞두고 상봉 행사를 일방적으로 연기한 만큼 이번에도 파행을 빚게 된다면 책임은 북한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북한이 진정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상봉 문제에서 전향된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당국자는 “정부는 이산상봉이 작년에 합의돼 추진된 사안이고, 더 이상 연기돼선 안 된다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 2차 고위급 접촉 열고 조율 시도
남북은 1차 고위급 접촉에서 상대방이 원하는 남북관계의 큰 방향과 현안에 대한 입장을 토대로 2차 고위급 접촉에서 조율에 나선다. 2차 접촉에서 논의될 핵심의제는 일정이 임박한 상봉 문제가 될 전망이다. 2차 접촉은 이날 오전 판문점 연락관 채널을 통해 북측이 먼저 제의했으며, 우리측이 이를 수용해 성사됐다. 2차 접촉은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측에서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북측에서는 원동연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이 각각 수석대표로 참석한다. 정부 당국자는 “남북이 어제 접촉에서 논의된 사안들을 계속 협의해나가기로 한만큼 그 연장선상에서 제의해온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2차 접촉을 북한이 먼저 제의했다는 점에서 전향적인 입장표명이 있을 것이란 기대섞인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북한이 국방위원회의 이른바 ‘중대제안’을 토대로 상봉 행사와 한미군사훈련 연계를 주장하는 기존입장을 고수할 경우 2차 접촉 역시 성과없이 끝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북한은 지난달 16일 발표한 중대제안에서 △남북간 상호 비방중상 중지 △적대적 군사행위 중지 △핵재난 방지를 위한 상호조치 등 3대 조치를 제안하고, 남측이 이를 수용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일단 북한의 반응을 지켜봐야겠지만 북한은 상봉 문제만이 아닌 중대제안의 전체적인 측면에서 움직이려 할 것”이라며 “북한이 우리측 입장을 받아들인다면 남북관계 진전을 원하는 진정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남북관계가 당분간 냉각기에 들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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