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전 여론조사업체 A 대표가 기자에게 한 얘기다. 대선까지 2년반 정도 남긴 시점에도 언급되지 않았다면, 후보 물망에 오를 수는 있어도 실제 대권을 거머쥔 사례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권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 김문수 전 경기지사, 더 나아간다면 홍준표 경남지사, 남경필 경기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선에서 대통령이 나올 것이란 얘기였다. A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비록 하위권이었지만 이름을 올리고는 있었다”고 했다.
초유의 메가톤급 파장을 몰고 온 ‘유승민 정국’이 대선 통념도 바꿔놓고 있다. 무명(無名)에 가까웠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불과 2주 사이에 일약 여권 유력주자로 떠오른 것이다. ‘막차’를 탔다는 해석도 있지만 이런 급부상 자체가 이례적이다.
유 전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으로부터 찍힌 ‘약자’가 아니라 엄연한 차기 주자로서 ‘강자’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제는 ‘정치인 유승민’을 본격 검증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유승민, 차기 대권 지지도서 여권 2위로 급부상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는 지난 8일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 결과 유 전 원내대표가 16.8%의 지지율로 김무성 대표(19.1%)에 이어 2위에 올랐다고 9일 밝혔다.
유 전 원내대표는 지난달 23~24일 여론조사에서 5.4% 지지율로 4위에 올랐다. 이때부터 유 전 원내대표는 처음 대권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무려 11.4%포인트 급등해 선두권까지치고 올라왔다. 유 전 원내대표는 그동안 “내공이 있다” “콘텐츠가 있다” 정도의 평가를 받던 기대주였다. 그런 와중에 막상 여론조사 ‘수치’가 나오자 여권도 덩달아 술렁이고 있다.
개혁 보수를 내건 유 전 원내대표는 30대와 40대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 30대와 40대에게 각각 24.0%, 29.7%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보수 성향이 짙은 김 대표는 30대(8.1%)와 40대(9.4%)에서 10%를 넘기지 못 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정치 성향별로는 중도층과 진보층에서 각각 18.5%, 28.6%로 1위를 차지했다. 보수층(9.2%)에서는 김 대표(33.9%)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유 전 원내대표가 높은 표(票) 확장성을 갖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는 야당층에서 20.1%를, 무당층에서 20.9%의 지지를 각각 받아 1위에 올랐다.
◇劉 대권 행보, ‘이제 시작’ 관측…검증 과제 많아
다만 유 전 원내대표의 행보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관측이다. 지금의 그를 만든 건 ‘언더독효과’에 따른 상황적인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언더독효과는 경쟁에서 뒤진 사람에게 동정표가 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정치인 유승민’은 아직 대중들에게 낯설다. 검증된 것에 비해 지지율이 너무 가파르게 올랐다는 냉정한 평가도 있다. 그가 3선 국회의원을 거치는 동안 전국구 행보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 전 원내대표 입장에서는 스스로 그리는 시대정신과 그에 따른 정책들을 여권, 더 나아가 국민들에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생긴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이를테면 유 전 원내대표의 트레이드마크 격인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은 여권 내에서도 반대가 많다”면서 “새누리당의 정통 보수노선에 중도노선을 접목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고 했다.
그의 노선을 따르는 ‘유승민계’도 덩달아 주목된다. 최측근인 재선의 김세연 의원과 초선의 김희국 민현주 이종훈 의원 외에 10명 안팎 정도의 세(勢)가 형성돼있다고 한다. 유 전 원내대표의 추후 정치력 여하에 따라 비박계 최대계파인 ‘김무성계’와도 자웅을 겨룰 수 있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유 전 원내대표 주변에서는 그가 당분간 ‘로키(low-key)’ 행보를 할 것으로 본다. 국회 상임위 활동 등에 주력하고 대외행보는 자제할 것이란 얘기다. 한 측근은 “대선 행보를 보이는 것은 아직 아니다”면서 “당분간 낮게 갈 것”이라고 했다. 또다른 비박계 관계자는 “이제부터 정말 잘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