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테라는 2013년 미국 최초로 디지털자산 펀드를 출시한 벤처캐피탈(VC)이다. 코인베이스벤처스, 애니모카 브랜즈, a16z 등과 함께 글로벌 주요 크립토 VC로 꼽힌다. 현재 운용자산은 약 35억달러다. 그간 스타트업 250곳 이상에 투자했으며, 그중 75%에는 리드 투자자로 참여했다. 포트폴리오 기업 25곳이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유니콘 기업이 됐다. 서클과 리플을 비롯해 코인베이스, 크라켄, 비트고, 앵커리지 등을 주요 포트폴리오사로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2014년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와 함께 코빗의 시리즈A 투자를 공동 주도했으며, 최근에는 블록체인 리서치·인프라 기업 포필러스에 투자했다. 그는 지속적인 한국 투자에 대해 “판단 근거는 2014년이나 지금이나 같다”며 “한국은 신기술을 일찍 받아들여 온 놀라운 이력이 있고, 뛰어난 기술 인재도 풍부하다”고 설명했다.
비 파트너가 꼽은 한국 내 관심 분야는 네 가지다. 첫 번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유통이다. 그는 지갑, 가맹점 결제 접점, AI 네이티브 결제망을 구축할 기회가 있다고 봤다. 토큰증권 분야에서는 발행된 자산이 거래될 시장에 주목했다. 비 파트너는 한국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규제를 받는 시장마다 거래할 장소가 필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관을 위한 블록체인 운영 인프라도 관심 대상이다. 기관이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보호하는 데 필요한 스테이킹·검증자 인프라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와 함께 한국 자본을 글로벌 금융상품과 연결하고 글로벌 자본을 한국 기반 금융상품으로 잇는 서비스에도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한국 안에서 관련 규제를 준수하며 이 수요에 대응하는 기업에는 큰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판테라가 코빗에 이어 포필러스에 투자한 배경에는 한국 시장의 규모와 현지 전문성을 확보하려는 판단이 있다. 비 파트너는 “(자) 집계로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국가별 디지털자산 시장이지만, 서구 자본이 가장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시장 중 하나이기도 하다”며 “판테라의 글로벌 관점과 포필러스의 국내 전문성을 교류하면 투자 기회를 찾고 지역의 과제를 현지 기업들과 함께 풀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판테라가 한국에 처음 관심을 가진 계기는 활발한 거래였다. 비 파트너는 “2014년 코빗에 투자할 때 시장 활동이 우리의 관심을 끌었고, 그 이후로 시장은 계속 성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시장 활동이 인재와 금융기관의 관심을 끌어들여 인프라 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비 파트너는 한국의 산업 기반에서 새로운 토큰화 자산이 나올 가능성도 제시했다. 그는 “서구 투자자들은 한국의 담보로 활용할 수 있는 자산 기반도 과소평가한다”며 “글로벌 토큰화 실험은 주로 가치사슬 상류의 원자재를 토큰화하는 데 집중했지만, 한국은 가치사슬의 다른 지점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대역폭메모리(HBM), 조선, 원전 건설, 로봇 분야를 언급하며 향후 서울에서 형성될 토큰화 자산과 온체인 자본시장은 다른 지역과 다른 모습을 띨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한국에서 찾는 기회는 판테라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하는 분야와도 겹친다. 비 파트너는 투자 관심 분야를 △토큰화와 온체인 자본시장 인프라 △스테이블코인 결제와 새로운 자금 이동망 △게임·신흥시장 거래소 등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디지털자산 서비스로 나눴다.
그중 현재 가장 큰 투자 기회로는 실물연계자산(RWA)과 이를 거래·활용하는 시장 인프라를 꼽았다. 비 파트너는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검증된 기반”이라며 “또 하나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경쟁에 뛰어들기보다 그 위에 구축되는 거래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주목하는 시장 인프라는 토큰화 자산이 거래되고 자금 조달에 활용되는 증권 중개, 거래소, 대출·신용 시장 등이다. 비 파트너는 “이번 투자 주기에서 가장 큰 기회는 토큰화 자산을 위한 자본시장 인프라”라며 “사모대출, 사모주식, 부동산에는 오늘날 현대적인 거래시장이 없지만 토큰화가 이를 바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례로는 온도(Ondo)를 들었다. 온도는 블랙록 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한 미국 국채 토큰화에서 출발해 미국 외 지역 투자자를 위한 미국 주식 토큰화 서비스 ‘온도 글로벌 마켓’으로 사업을 넓혔다. 판테라는 역시 토큰화 자산을 담보로 활용하 온체인 대출 프로토콜 모르포(Morpho)에 투자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토큰화 상품의 고객도 달라지고 있다. 비 파트너는 “토큰화의 첫 고객은 후선 업무 비용을 줄이려는 기관들이었다”며 “실제 고객은 미국 자산의 수익률과 미국 주식에 접근하고 싶었던 한국, 일본, 중남미, 동남아시아의 투자자들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금융기관의 비용 절감 수단으로 검토되던 토큰화가 다른 지역 투자자에게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다.
판테라의 투자 판단에는 기술이 장기적으로 유망한지뿐 아니라 언제 실현되고 누가 비용을 지불하는지가 중요하다. 비 파트너는 “이 기업이 성공하려면 무엇이 충족돼야 하는가, 그 전제조건이 오늘 충족돼 있는가 아니면 10년 뒤에나 충족되는가를 본다”고 말했다.
서클과 리플은 제도권 금융 인프라가 형성될 시점을 길게 보고 투자한 사례다. 비 파트너는 “2014년 우리가 두 회사에 투자했을 때 대부분의 시장은 결제 앱으로 봤지만, 디지털자산의 지급·결제 영역이 규제를 받는 금융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쪽도 10년 안에 성과가 나온 것은 아니었다”며 “서클, 리플 모두 대부분의 스타트업이라면 버티기 어려웠을 규제와의 마찰을 수년간 겪었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기관 참여가 늘면서 디지털자산 인프라의 고객도 달라졌다고 봤다. 비 파트너는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디지털자산 인프라의 고객은 다른 코인 프로젝트였다”며 “2024년부터는 프랭클린템플턴, 아폴로, 로빈후드, 비자, 글로벌 은행 같은 기관으로 이용자층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구매자가 바뀌면 상품이 바뀌며, 벤처 투자는 상품을 따라간다”고 설명했다.
비 파트너는 앞으로도 시장의 고객이 어떻게 바뀌고, 새로운 상품이 언제 실제 수요로 이어질지를 분석해 투자 기회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20년 뒤 가능한 일을 상상하는 것은 어느 벤처 투자자나 할 수 있다”며 “뛰어난 투자자는 앞으로 5~10년 안에 무엇이 가능하고, 그 첫 단계가 성공하려면 무엇을 구축해야 하는지를 파악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