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순용 기자] 몇 해 전, 시력과 청력을 잃게 될 어린 딸을 위해 ‘꼭 봐야 할 풍경 목록’을 작성한 부모의 사연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사연의 주인공은 ‘어셔증후군’으로 약 5년 뒤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에 부모는 어린 딸의 시력과 청력이 남아있을 때 해줄 수 있는 건 모두 다 해주고 싶다며 눈물을 훔쳤다.
어셔증후군(Usher syndrome)은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되고, 귀도 잘 들리지 않게 되는 병이다. 시력소실을 가져오는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과 귓속 달팽이관의 문제가 함께 상염색체 열성으로 자녀에게 이어지는 난치성 유전질환이다.
상염색체 열성 유전으로 남녀 성별의 차이 없이 동등한 확률로 유전된다. 부모 둘 다 어셔증후군 유전자 보인자인 경우 자녀에게 증후군이 나타날 확률은 1/4이다. 부모 중 한 사람에게서 정상 유전자를 받고 다른 부모에게 변이 유전자를 받는다면 자녀는 변이 유전자 보인자가 되지만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어셔증후군은 선천성 난청 원인의 3~6%를 차지한다. 10만 명 당 1.8~6.2명에서 나타나고, 국내 환자 수는 약 8000명으로 추정된다.
윤준명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안과 교수는 “생후 18개월이 지났는데도 걸음마가 늦고 양측 난청이 있다면 어셔증후군을 의심해 볼 수 있다”며 “청력과 시력이 모두 없는 환자의 절반 정도는 어셔증후군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어셔증후군이라는 병명은 1914년 시각 손상과 청각장애를 모두 보이는 환자의 유전에 관한 논문(On the inheritance of retinitis pigmentosa)을 펴낸 스코틀랜드 안과 의사 찰스 하워드 어셔(Charles Howard Usher)의 이름에서 따왔다.
어셔증후군은 증상이나 발병시기에 따라 3가지 유형(Ⅰ~Ⅲ)으로 나뉜다. 제1형 어셔증후군(USH1형)은 가장 심한 형태로, 선천적으로 고도~심도의 양측 난청이 있고, 전정(평형) 기능이 손상돼 있다. 전정기능 손상으로 균형감각이 저하돼 걸음마를 시작하는 시기가 18개월~24개월로 늦어지게 되고, 몸에 균형을 잘못 잡고 기우뚱거리며 잘 넘어지게 된다. 10세 이전에 어두운 곳에서 잘 보지 못하는 야맹증 증세가 나타나고, 청소년기에는 망막색소변성증이 나타나면서 시력을 점차 잃는다.
제2형 어셔증후군(USH2형)은 가장 흔한 형태로 선천적으로 중도~고도의 양측 난청이 나타난다. 하지만 전정기능은 정상으로 몸의 균형을 맞추는 데는 문제가 없고, 걸음마 역시 생후 12개월 무렵으로 정상적인 균형 발달을 보인다. 20대 이후 망막변성이 나타나면서 시력이 저하된다.
제3형 어셔증후군(USH3형)은 출생 시 청각이나 시각, 몸의 균형을 맞추는 데 있어 큰 문제는 없다. 다만 언어발달 이후 다양한 정도의 진행형 감각신경난청와 망막색소변성증, 전정기능 이상을 보이기 시작하고 사춘기를 겪으면서부터 그 정도가 더 심해진다.
대표적인 증상은 △점진적 시력상실 △터널시야 △야맹증 △색소성 망막염 △실명(이상 시력) △선천적 청력상실 △점진적 청력상실 △청각장애(이상 청력) △평형감각 이상 등이다. 어셔증후군은 청력장애와 시력장애가 있는 경우 청력검사, 시력검사, 전정기능검사, 유전자검사를 통해 진단한다.
어셔증후군에 대한 치료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현재 유전자치료를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난청, 시력 저하, 전정기능 저하에 대해서는 각 기능의 상태에 따라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청력장애가 심하게 나타나는 제1형 환자는 보청기나 인공와우 이식과 같은 청각 재활이나 언어치료 등의 재활치료가 필요하다. 제2형 환자의 경우 조기에 보청기 사용과 언어교육을 시행하면 정상적인 언어발달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시력저하에 대해서는 특수 안경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전정기능 이상으로 몸의 균형을 잘 잡기 힘든 경우에는 균형 재활 훈련을 통해 평형기능과 체성감각을 높여주고, 낙상 예방을 위한 조치도 필요하다.
윤준명 교수는 “어셔증후군은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악화되는 경과를 밟으며 심각한 경우 청각장애와 실명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증상의 심각도는 개인에 따라 다르고 모두가 같은 증상을 겪는 것은 아니다. 아직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지만 조기에 증상을 발견하고 각 개인의 증상 정도에 따라 보청기, 인공와우, 시각 보조 도구 등을 이용해 남아있는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