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연말이다. 이른바 ‘전망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해마다 요맘때면 각 분야의 새해 시장 전망이 잇따른다. 기업들은 이를 참고해 내년도 사업계획과 예산 등을 짜는 경우가 많다. 개인들에게는 시장 전망이 투자 여부와 시기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로 활용되기도 한다.
부동산 분야도 마찬가지다. 연말을 맞아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이 앞다퉈 새해 집값 전망을 내놓고 있다. 매매가 소폭 상승, 전셋값 오름세 둔화를 점치는 데가 많다.
그런데 지난 몇년 간 이들이 내놓은 집값 전망은 대부분 빗나갔다. 중장기 전망은 차치하고라도 바로 이듬해의 시장 전망조차 완전히 거꾸로 하기 일쑤였다. 건설산업연구원은 지난해 말 펴낸 ‘2013년 건설·부동산 경기 전망 보고서’에서 서울·수도권 집값은 ‘상저하고’, 지방은 ‘상고하저’의 양상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주택산업연구원도 “서울·수도권 집값은 상저하고의 경제 성장 흐름과 유사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주택시장 침체가 이어지겠지만 하반기부터는 집값이 상승세를 탈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대부분의 부동산 전문가들도 “올해 여름이나 하반기가 매수 최적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올해 주택가격은 어땠는가. 한마디로 과녁을 한참 빗나갔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 말까지 서울 아파트값은 1.47% 내렸다. 수도권은 1.53% 하락했다. 하반기만 보더라도 서울은 0.23% 내렸고, 수도권도 0.16% 빠졌다. 올 상반기부터 집값이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의 전망만 믿고 내집 마련에 나섰던 사람들은 낭패를 봤을 게 뻔하다.
연구기관들의 빗나간 전망은 올해 뿐 아니다. 지난해 주택시장의 경우 이들의 예측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서울·수도권 아파트값이 1.4%로 오른다고 봤다. 하지만 서울은 4.32%, 수도권은 3.71% 내렸다. 건설산업연구원과 대한상공회의소도 전국 집값이 각각 4%, 3.5%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0.18% 떨어졌다.
압권은 2006년도 집값 전망이다. 국토연구원·건설산업연구원·주택산업연구원 등 대부분 연구기관은 2005년 말 새해(2006년) 집값이 2~4% 내릴 것이라고 점쳤다. 종합부동산세 도입과 다주택자 양도세 강화 등 고강도 부동산 규제 방안을 담은 ‘8·31 부동산 종합대책’(2005년 발표) 영향으로 집값이 빠르게 안정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그러나 2006년은 “집값이 미쳤다”고 말할 정도로 아파트값이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그해 전국 아파트값은 13.23% 뛰었다. 서울은 무려 22.97% 치솟았다.
그렇다면 연구기관들의 전망이 왜 이처럼 엉터리 일색일까. 그것도 전망 수치가 2∼3%포인트 틀리는 게 아니라 아예 오르고 내리는 것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기 일쑤인데다, 예상한 변수라 하더라도 실제 진행 과정에서 그 강도가 달라지는 일도 허다하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정책 변수가 시장 향방을 결정짓는 요인이다. 언제, 어떤 내용을 갖고 나올지 모르는 정부 정책에다 관련 입법 여부 등을 변수에 넣어 예측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올해 집값 전망이 빗나간 것도 관련 입법의 국회 처리 지연라는 정책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를 예측 변수에 넣기 어렵다는 점도 또다른 이유다. 자산시장이 그러하듯 부동산도 심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런 까닭에 집값 전망 통계를 내는 한 전문가는 “전망에 큰 의미를 두지 말라”고 조언한다. 전망치를 정확히 맞히느냐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현재의 시장 상황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현장에 있는 전문가, 가령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감’이 좀 더 정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와 재테크는 상식이다. 따라서 상식을 따르면 된다. 답이 없는 경기 전망이나 시장 예측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집값이 싸면 사고 비싸면 팔면 된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해답은 의외로 간단한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