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지하벙커·경희궁 방공호·신설동 유령역…역사속 비밀공간 열린다(종합)

박철근 기자I 2017.10.19 13:47:09

1970년대 조성 여의도 지하벙커..대통령 경호용 시설 추정
2015년 시범 개방 후 3년간 35억 투입…소파·세면대·화장실 등 원형 보존
경희궁 방공호 일제말기 조성, 공습대비 콘크리트 3m 두께
1974년 건설한 신설동역, 노선변경 후 43년만 개방

[이데일리 박철근 기자]
서울시는 1970년대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를 전시·문화시설로 탈바꿈시켜 19일 시민에게 전면 개방했다. 이곳에는 당시 사용하던 소파와 세면대 등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여의도광장의 역사 등을 소개한 사진 등을 전시했다. (사진= 노진환 기자)
고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경호용으로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의도공원 지하의 비밀벙커가 시민에게 전면 공개된다. 이와 함께 경희궁 방공호와 신설동 유령역도 시민에게 시범적으로 선보이는 등 그동안 굳게 닫혔던 서울시내 비밀 지하공간이 시민 품으로 돌아간다.

서울시는 과거 필요에 의해 조성한 후 지금은 방치된 여의도 지하벙커(세마 벙커, SeMA Bunker), 경희궁 방공호, 신설동 유령역 등 세 곳을 시민에게 개방키로 했다고 19일 발표했다.

이날 세마 벙커 개관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을 재미있는, 재미있어 죽을 것같은 도시로 만들고 싶다”며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어렵고 잊혀졌지만 역사와 기억을 간직한 공간을 시민에게 개방하는 것”이라며 “특히 여의도 지하벙커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가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경희궁 방공호나 신설동 유령역 역시 새로운 시민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세마벙커는 이날 정식개관을 시작으로 매주 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개방한다. 경희궁 방공호와 신설동 유령역은 오는 21일부터 내달 26일까지 주말에만 사전예약을 통해 임시 개방 후 2018년에 중장기 활용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다.

박원순(왼쪽 첫번째) 서울시장과 신경민(왼쪽에서 두번째)의원 등이 19일 여의도 지하벙커 개관식에 참석했다. 발견 당시 내부 소파를 재현한 곳에 앉아 소감을 전하고 있다. (사진= 노진환 기자)
◇소파·세면대 등 40년전 원형 보존한 여의도 지하벙커

지난 2005년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건립공사 당시 우연히 발견한 세마벙커는 조성시기와 주체, 목적 등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시에 따르면 1976년 11월 여의도 일대 항공사진에는 공사흔적이 없지만 이듬해인 1977년 11월 항공사진에는 벙커 출입구가 나타나있다.

박 시장은 “벙커 위치가 당시 국군의 날(10월 1일) 사열식 당시 단상이 있던 곳과 일치한다”며 “1977년 국군의 날 행사 당시 대통령 경호용 비밀시설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면적 871㎡(약 263평) 규모의 세마벙커는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한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벙커 내부에는 당시 사용했던 소파와 세면대, 화장실 등을 원형 그대로 보존했다.

김준기 서울시 안전총괄본부장은 “소파의 디자인은 유지한 채 낡아버린 재질만 교체했다”며 “시민들이 직접 앉아볼 수 있도록 했고 화장실 변기 등은 그대로 둔 상태”라고 설명했다. 내부공간에는 예술품을 설치하고 전시회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했다.

시는 지난 2015년 10월 시민들에게 공개한 후 사전 예약제로 임시 개방했다. 이후 시민의견을 수렴한 결과 63%가 열린 전시문화공간으로 조성하자는 의견이 나와 3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이날 전시공간으로 전면 개방했다.

벙커의 두께를 가늠해볼 수 있는 50㎝ 코어 조각도 전시했다. 시는 “당시 벙커가 어떤 폭격에도 견딜 수 있게 얼마나 치밀하고 틈 없이 만들어졌는지 코어 조각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 접근성 제고를 위해 IFC몰 앞 횡단보도에 출입구를 설치하고 반대편에는 보행약자를 위해 승강기도 새롭게 설치했다.

(자료= 서울시)
◇경희궁 방공호·신설동 유령역 21일부터 공개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 구석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설치된 경희궁 방공호도 시민 품으로 돌아간다.

1378㎡(약 416평) 규모의 10개의 작은방으로 이뤄진 경희궁 방공호는 폭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성토 높이는 8.5m, 외벽은 약 3.0m 두께를 자랑한다. 지하 직선거리도 약 100m에 이른다.

시는 “이곳은 일제말기 비행기 공습에 대비해 통신시설을 갖춰 만든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일제강점기 침략과 아픈 과거의 역사뿐만 아니라 암울했던 당시의 상황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시는 식민지 말기 암울했던 당시 상황과 방공호의 느낌을 되살리기 위해 방공호 1층 천장에 3D(3차원)로 재현된 폭격기 영상과 서치라이트를 이용한 대공관제를 연출했다. 2만여 장의 일제강점기 관련 사진으로 실시간 포토 모자이크 미디어아트를 재현했다. 2층 계단엔 방공호 내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

지난 1974년 이후 43년 동안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신설동 유령역’도 공개한다.

서울시는 1974년 지하철 1호선 건설 당시 5호선(연희동∼종각∼동대문∼천호동)일부가 될 신설동역을 동시에 건설했지만 5호선 노선이 변경(왕십리∼청구∼현 동대문역사문화공원)되면서 기능을 상실해 일반인 출입을 제한하고 지도에도 등재하지 않아 유령역으로 불렸다.

군자차량기지 완공 시점인 1977년 8월까지 차량 정비작업장으로 활용하다 현재는 1호선 동묘역 행 종료 후 군자차량기지 입고 열차가 통과하는 선로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가수의 뮤직비디오나 영화·드라마 등의 촬영장소로 활용할 뿐 일반 시민에게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희궁 방공호와 신설동 유령역은 사전신청을 통해 11월 26일까지만 주말에 한시적으로 개방한다.

두 곳에 대한 사전예약은 19일 오후 2시부터 내달 22일 오후 6시까지 ‘경희궁 방공호’는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http://www.museum.seoul.kr), ‘신설동 유령역’은 서울시 홈페이지(http://safe.seoul.go.kr)에서 각각 신청하면 된다.

경희궁 방공호(왼쪽)와 신설동 유령역은 21일부터 내달 26일까지 주말을 이용해 시범 개방한다. 경희궁 방공호는 3차원으로 재현한 폭격기 영상과 2만여장에 이르는 일제강점기 사진을 선보인다. 신설동 유령역은 개방기간 중 일반시민과 전문사진작가가 촬영한 서울의 각종모습을 영상사진으로 전시한다. (사진=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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