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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리스트의눈]신평사의 밀린 숙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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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영 기자I 2014.04.02 20:00:31
[이혁재 IBK투자증권 투자전략팀 연구위원] 신용평가사들이 달라지고 있다. 등급조정 내역 안내, 시의적절한 이슈성 보고서 발표뿐 아니라 지난해 말부터 등급 하향 조정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긍정적이다.

신용등급 정의에서 투기등급은 ‘BB+’등급 이하를 말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BBB’급까지 투기등급으로 취급해왔으며 STX그룹과 웅진그룹 사태를 겪으면서 ‘A’급마저 투기등급 비슷하게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기업은 A급에 속한 우량회사다. 현재 무늬만 A급인 회사들과 실제 A급인 회사가 섞인 가운데 투자자가 옥석을 가려내기 어렵다 보니 A급을 무조건 기피하면서 우량한 A급 회사의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아졌다.

최근 경색된 회사채 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한 의미심장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기업평가가 BBB+였던 한진해운, 현대상선, 현대로지스틱스의 신용등급을 갑자기 두 단계나 낮은 BBB-로 조정한 것이다. 사실 등급 하향에 늦은 감이 있었지만 한꺼번에 3개 회사의 등급을, 한 단계도 아니고 두 단계씩이나 내린 것은 분명 과거와 다른 행보였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한국신용평가가 한술 더 떠서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상선, 현대로지스틱스의 신용등급을 무려 세 단계나 낮은 BB+로 조정하며 단숨에 투기등급으로 보냈다.

신용평가사의 이런 깜짝 행동은 적잖은 파문을 불러왔다. 전날만 해도 투자등급이었던 채권이 손 쓸 겨를도 없이 투기등급 채권이 됐다. 어떤 회사에 비슷한 조치가 추가로 취해질지 불확실해지면서 회사채에 대한 수요는 얼어붙었다. 일부 회사는 수요 부족으로 회사채 발행 계획을 철회키도 했다. 회사채가 발행도, 유통도 안 되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는 가운데 신용평가사는 비슷한 조치를 추가로 취할 것임을 공공연하게 밝혔다.

이런 신용평가사의 ‘몰아치기식 밀린 숙제하기’에 대해 “그동안은 뭐하다가 인제 와서 갑자기 왜?”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신용평가사들이 가야 할 방향인 것은 맞기에 나무랄 수는 없다.

다만 오랫동안 쓰지 않고 갈기만 했던 칼을 휘두르기 위해 일단 뽑았다면 주저해선 안 된다. 태생적으로 시장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등급 하향 조정을 마음먹은 회사가 있다면 지난해 실적 발표가 마무리된 지금 시점에 일괄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치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안 그래도 경색된 회사채 시장은 불확실성에 떨며 거래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 신용평가사가 직접 나서서 이른 시일 내 옥석을 명확하게 구분해준다면 당장은 아프고 후유증이 크겠지만 시간이 흐른 뒤 회사채 시장이 살아나고 정상화하는 큰 변곡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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