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워싱턴 D.C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과잉생산에 따른 신(新) 통상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최고 싱크탱크로 손꼽히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1980년대 일본 상품들이 미국 시장을 잠식했을 때 느꼈던 당혹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워싱턴 D.C.에서 느끼는 미국의 대중국 위기감(차이나 포비아)은 상당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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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최근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패널, 철강, 석유화학까지 엄청난 물량을 생산한 뒤, 중국 경기침체로 내수에서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자 전 세계로 ‘밀어내기’ 수출을 하고 있다. 미·중 갈등으로 가장 큰 시장인 미국 수출길은 막혀 있다. 그러다 보니 EU를 비롯해 남미, 인도 등으로 물량 밀어내기를 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 기업들이 싼 노동력과 낮은 환경비용, 중국 정부의 보조금 등을 바탕으로 저가로 물량공세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각국의 산업이 버텨낼 수 없자, 미국과 EU, 브라질, 칠레마저도 반덤핑 관세 카드를 꺼내 들고 있고 중국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여 전 본부장은 “2000년대 있었던 제1차 차이나 쇼크는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값싼 (저부가가치) 중국산 제품들이 전 세계로 흘러가고 선진국의 탈산업화를 가속화시켰다”면서 “지금은 철강, 석유화학을 넘어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 첨단기술까지 엄청난 물량을 밀어내며 세계무역을 교란시키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에서 중국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 일본, 독일, 한국을 합한 것보다 많다”며 “1차 때와 달리 중국은 ‘공룡’이 된 상황이라, 조금만 움직여도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고 덧붙였다.
미국을 비롯해 EU 등은 재무부·산업부 수장들이 과잉공급 자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첨단기술 발전으로 글로벌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야망을 쉽게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여 전 본부장은 “1980년대 대규모 대미 흑자를 내던 일본은 1985년에 G5와 ‘플라자 합의’를 맺으며 엔화를 평가절상시키는 등 서방국과 판을 깨트리기보다는 그 안에서 협력을 선택했다”면서 “중국이 일본처럼 기존의 판 안에서 조화를 모색할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중국도 대국으로서 자국의 경제정책이 세계 경제에 어떤 여파를 미칠지 감안하면서 정책을 펴야 한다”면서 “우리나라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파트너 국가들과의 공조를 통해 글로벌 해결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멕시코 우회 수출 문제…“미국, 내년부터 USMC 재검토할 것”
중국 기업들의 멕시코를 통한 우회 수출 문제도 새 통상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중국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수입국 1위 자리에서 밀려났다. 대신 멕시코가 중국의 자리를 꿰찼다.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으로 중국이 멕시코, 베트남 등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우회로를 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 전 본부장은 “중국 자본이 멕시코나 베트남 등 동남아 현지에 공장을 지어 생산한 뒤 미국으로 수출하는 등 규제가 생기면 우회로를 만드는 일종의 ‘고양이와 쥐’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며 “최근 미 의회에서 나오는 법안들을 보면 과거 ‘중국에서(메이드 인 차이나)’ 수입되는 제품에 규제 초점을 맞추는 데서 나아가 ‘중국법인 소유’ 회사의 제품에까지 확대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당장 2020년 발효된 북미 3개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인 미국·멕시코·캐나다조약 (USMC)을 재검토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UCMC는 기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보다 원산지, 노동규정이 강화됐는데, 미국은 중국에 대한 규제망을 보다 촘촘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 전 본부장은 “바이든이든 트럼프 전 대통령이든 누가 되든 내년 출범할 새 행정부에 중국과 멕시코는 가장 큰 현안이 될 것”이라며 “2026년에 USMC를 공식 리뷰해야 하는데, 내년부터 바로 검토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중국에 대한 견제가 강화될수록 우리나라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중국에서 다변화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최근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으로 몰리고 있다”며 “지금은 미국 경제가 견실하게 성장하고 있고 배터리, 반도체 등 대미투자로 한국기업은 미국에 필수불가결한 파트너가 된 만큼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