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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가짜뉴스 양산하는 엉터리 국정감사

송이라 기자I 2018.10.23 12:16:36

국감 보도자료 통계오류 빈번…기본적 분석실수 잦아
오류투성이 자료 배포해 놓고 '나몰라라'도 여전
국감장서 잘못 지적하면 화부터..구태 벗어야

[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국정감사의 계절이다. 국회 각 상임위는 지난 10일부터 이달 말까지 각 정부부처를 단상에 세워 정책을 잘 만들고 있는지, 애먼 곳에 혈세를 낭비하지는 않았는지, 행정집행 과정에서 비리는 없는지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본 후 질문공세를 펼친다. 국회가 정부 정책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한 장치가 국정감사다.

정부부처와 기관들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의원실에서 요구하는 온갖 자료를 만드느라 밤잠을 설치고 의원들은 이를 토대로 질의서를 만들며 국감스타를 꿈꾼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국감에서 비리를 저지른 사립유치원 명단을 공개해 일약 국감스타로 떠올랐다. 일부 사립유치원 원장이 정부 지원금으로 명품을 구매하고 해외여행 등에 쓰는 등 나랏돈을 쌈짓돈처럼 사용했다는 그의 폭로는 파장이 컸다.

박 의원 사례처럼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국가 예산이, 행정력이 무의미하게 낭비되고 있지 않는 지 국가 권력이 국민의 권익을 침해하고 있지는 않은 지 감시하는 게 국감의 목적이다.

문제는 정확한 자료와 확인 없이 가짜정보를 생산해내고 국감장에서 일단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엉터리들이 수두룩 하다는 점이다.

지난 15일 국회 행정안전위에서 실시한 소방청 국감에서 윤재옥 자유한국당 의원은 “소방청이 화재안전특별조사를 실시하면서 채용한 보조인력 1061명 중 40%가 업무와 무관한 청년들”이라며 “정부의 일자리 창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단기 일자리 정책에 불과하다”고 질타했다.

조종묵 소방청장은 “보조인력은 별다른 전문적 지식 없어도 수행이 가능하고 교육을 따로 시킨다”고 답했다.

그러나 소방청 설명을 들어보면 질책도 항변도 모두 틀린 소리다. 채용한 보조인력은 관련 자격증 소지자거나 관련학과 출신 또는 관련학과 출신에 자격증도 보유한 사람 세 가지 분류다. 무자격자는 아예 없다는 얘기다. 소방청 설명을 들어보면 윤 의원이 ‘관련학과 출신 자격증 소지자’를 자격증 보유는 커녕 관련학과도 아닌 인력으로 오인했다는 것이다. 관련학과 출신에 자격증까지 보유한 전문가들이 국감장에선 무자격자로 둔갑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종필 자유한국당 의원은 인사혁신처와 고용노동부 등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해 남성육아휴직 비율이 대기업 16.3%, 중소기업 10.1%, 정부부처 3.8% 순이라며 “정작 저출산 정책에 모범을 보여야 할 정부중앙부처 공무원들도 남성육아휴직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저출산 정책이 탁상공론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또한 통계분석의 오류다. 정부부처 남성육아휴직 사용률은 ‘육아휴직이 가능한 전체 남성 공무원 중에 실제 사용한 비율’을 말하는 반면 대기업·중소기업 육아휴직비율은 ‘실제 육아휴직을 사용한 직원 중 남성비율’이다.

기준 자체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자료는 배포됐고 의원실은 나몰라라다. 속이 타들어가는건 의원실이 아닌 담당 공무원 뿐이다.

실제로 인사혁신처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 공무원은 지난해 1882명으로 전체 육아휴직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2.6%다.

정부부처의 한 공무원은 “의원실에 제출한 통계자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해당 의원이 강조하는 프레임에 맞게 짜깁기 형식으로 재가공돼 만들어지는 자료가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올해 국정감사 첫 날이었던 지난 10일 류희인 행정안전부 재난관리본부장은 한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면서 “의원님 발언 중 두 가지가 사실과 다릅니다”라고 말했다가 해당 의원으로부터 “어디다 대고 잘못했다는 소리를 하냐. 점잖게 얘기할 때 좋게 받아들여라”며 호된 꾸지람을 받았다.

국감은 행정부가 제대로 일하고 있는 지 감시하는 자리지 윽박지르고 갑질하라고 있는 자리가 아니다. 준비없이 국감장에 섰다가는 언젠가 밑천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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