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원역 1번 출구, 쌓여가는 국화…“너무 허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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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역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추모공간을 찾은 20대 여성 이모씨는 “제가 뭐라도 했다면 이 정도까지는…”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는 참사 직전까지 이태원에 있었다고 했다. 그는 참사가 발생하기 30분전쯤 ‘사람이 너무 많아 피곤하다’는 친구와 함께 귀가하면서 참변을 피했다. “왠지 모를 자책감이 든다”던 이씨는 국화를 내려놓은 후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엔 희생자들에 바치는 국화와 술·음료·간식·담배 등으로 가득했다. 벽면에는 시민들이 직접 쓴 편지와 포스트잇이 가득 붙여져 있었다. 포스트잇에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기원한다’는 등의 글이 담겨 있었다. 외국인 희생자도 26명 발생해,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영어·일본어·중국어 등으로 쓰인 편지와 포스트잇도 상당했다.
출근길, 점심시간에 추모공간에 들려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이들도 있었다. 일부는 자신이 준비해 온 편지를 국화 위에 놓은 뒤 잠시 묵념을 하고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틀째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는 고모(31)씨는 “평소 출근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나와 이곳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며 “몇 년 전 이태원에서 살아서 그런지 남 일 같지 않고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은 직장인 김준식(50)씨는 “점심시간에 가장 가까운 분향소를 찾았다”며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게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대구에서 서울로 직장면접을 보러 왔다는 이상민(26)씨는 “친구들 같기도 하고 남일 같지 않아 일부러 조문하러 왔다”고 말했다.
◇분향소 애도발길 계속 “뉴스보면 화 솟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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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도 계속해서 추모객이 몰려들었다. 이태원역 1번출구, 녹사평역 분향소와 마찬가지로 추모객들이 놓고 간 꽃다발, 편지, 음식들이 가득했다.
대학생 아들을 둔 김영숙(56)씨는 “우리 아이도 시험 끝나고 (이태원 참사 현장에) 갈 수 있었는데 안 가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게 되더라, 이런 생각 자체가 너무 미안하다”며 “너무 많은 사람이 어이없는 죽음을 당해 눈물도 나고 화도 난다”고 했다.
서울 한 대학교 어학당 교사인 현나래(37)씨는 “한 다리 건너 아는 유학생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즐겁게 한국 생활을 하고 싶었을 텐데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희생당해서 마음이 너무 안 좋다”고 했다.
제주도 여행을 간 스무살 손자가 참사 당일 이태원에 가려다가 서울행 비행기 표를 못 구해 화를 면했다는 최모(74)씨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최씨는 “세상을 다 산 노인들이 죽었으면 이렇게까지 가슴이 안 아플 텐데… 한창 나이 아이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백 명도 넘게… TV 보면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고 탄식했다.
정부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모(23)씨는 “경찰 신고도 있고 맞은편에 파출소도 있는데,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정부가 뭐했나? 뉴스보면 화만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노모(37)씨도 “신고도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 정부가 안일하게 대처했다”고 꼬집었다.
한편 전국 17개 시·도에 설치된 합동분향소는 국가애도기간이 끝나는 오는 5일까지 운영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