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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 “시장을 보는 눈이 각 기업을 견제함으로써 선 순환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정책이 취지에 맞게 잘 작동하는 것”이라며 “강제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기업들이 시장의 요구와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고 제언했다.
◇ “‘시장의 눈’이 기업들 압박…강제하면 역효과”
16년 전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 중 처음으로 지주사 섹터를 만들었던 이 연구원은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정부의 역할은 기업이 스스로 자본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 계획을 세우고, 이를 이행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것”이라며 “밸류업 공시에 세제 지원과 같은 혜택이나 강제성을 부여하면 기업이 형식적으로 참여하거나 허위 공시가 생겨나는 등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당근과 채찍, 즉 인센티브와 페널티 등을 도입해 이를 잣대로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 연구원은 시장의 요구에 의해 기업 스스로 자연스럽게 ‘밸류업’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고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이 자본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선 곳간에 여유가 있어야 하고, 이익의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며 “두 가지를 충족한 기업이 ‘밸류업 공시’를 하지 않으면 시장의 눈이 견제와 압박을 할 것이고, 특히 외국인 투자자의 요구가 이어지면서 기업이 매력도를 끌어올리고, 외국인 투자가 다시 이어지는 선 순환적인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이 연구원은 강제성보다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며 밸류업 공시가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주환원 여력이 있는 기업을 향한 주주행동주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지배구조가 개선될 수 있고 또한 밸류업에 참여했다는 관점에서 기업이 이를 홍보 기회로도 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이번에 발표된 ‘밸류업 지원방안’의 아쉬운 점으로 이사회의 책임이 빠진 점을 손꼽기도 했다. 정부가 지금까지 공개한 밸류업 프로그램의 내용에는 밸류업 계획 수립 과정에서 이사회의 보고, 심의 또는 의결을 거치는 것은 의무사항에서 빠졌다. 이 연구원은 “이사회의 책임 강화는 조금 더 선명하게 함으로써 밸류업 공시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 “자본 활용성 제고…일관성 있는 정책이 중요”
이 연구원은 밸류업 프로그램의 초점을 자본활용성을 높이는 데 둬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간 국내 기업들의 주가 상승이 부진했던 이유가 기업의 자본 활용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국내 기업들의 자본투자, 주주환원와 관련해 자본 활용도가 전혀 표준화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의식으로 떠올랐다”며 “자본활용도가 낮기 때문에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지표가 낮고, 주가가 제값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연구원은 “외국인 자본 비율이 높고, 이익이 계속 부풀고 있지만, 자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쌓아두고 있는 기업이 밸류업 프로그램의 주요 타깃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밸류업 공시 대상을 무조건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할 게 아니라 전략적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 연구원은 “곳간에 여유가 없거나 이익을 내기 어려운 중소형 성장주들은 밸류업을 할 여력이 없기에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고, 애초 밸류업 정책 취지의 맞는 타깃도 아니다”라며 “일본판 밸류업의 경우도 대형상장사 중심으로 움직인 점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에 따라 주목해야 할 업종으로 이 연구원은 은행과 자동차 외 한국전력과 같은 유틸리티 부문을 손꼽기도 했다. 그는 “밸류업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지속성”이라며 “당근과 채찍에 관심을 두기보다 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시장 참여자가 모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