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유럽연합(EU)이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러시아 추가 제재방안을 놓고 사분오열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반군 측도 여전히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시신 수습과 사건 원인 조사도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 알맹이 없는 추가제재‥이해관계 갈리자 맨 얼굴 보인 EU
EU 외무장관들은 22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어 러시아 관리들의 자산을 동결하고 비자 발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는 기존 제재를 한 단계 강화한 조치다.
그러나 예상대로 무기와 에너지 거래 금지를 포함한 고강도 경제제재 조치를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회의에서 러시아 무기수출 금지 방안이 거론됐지만, 러시아에 상륙함을 수출하려고 하는 프랑스가 강력히 반대하면서 불발에 그쳤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우리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프랑스를 비난했고,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상륙함 공급 계약은 2011년도에 체결된 만큼 제재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맞받아쳤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회당 당수 장-크리스토프 캉바델리도 영국을 향해 “뒷마당부터 청소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런던 금융시장을 주 무대로 움직이는 러시아 올리가르히(재벌) 규제부터 하라는 압박이다. 마찬가지로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독일은 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고, 금융제재도 회원국 간 입장이 갈리면서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EU 외무장관들이 24일 새로운 제재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제재 대상을 확대하는 선에 머무를 전망이다.
◇사고 조사 지지부진…답답한 네덜란드 “사고수습 총괄하겠다”
사고가 발생한 지 닷새가 지났지만 제대로 된 현장조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사고현장 주변에는 교전이 계속되고 있고, 친러 반군들이 증거를 훼손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으로 알려져 있다. 외신들은 푸틴 대통령이 최선을 다해 사고 조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시신 수습도 녹록치 않다. 우크라이나 반군은 282구의 시신을 수습해 넘겼다고 주장했지만, 네덜란드는 정작 확인된 시신은 모두 200구에 불과했다고 반박했다.
당장 가장 많은 193명의 사망자를 낸 네덜란드가 발끈하고 나섰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반군으로부터 받은 MH77편 블랙박스를 네덜란드 정부로 넘겼지만, 반군측이 가지고 있던 블랙박스의 기록 조작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희생자 시신을 수습하고, 가능한 한 최선의 조사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사고기 조사를 총괄 지휘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 정보당국은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반군의 실수로 격추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훈련을 부실하게 받은 동부의 친러시아 반군들이 발사한 SA-11 지대공 미사일(부크)에 의해 격추됐다는 것.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반군의 미사일 발사에 관여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