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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새 연금개혁법, 초고속 서명후 새벽에 기습 공포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5일 새벽 3시 28분경 기습적으로 새 연금개혁법을 공포했다. 전날 오후 5시 54분 프랑스 헌법위원회가 법안 대부분의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린 지 10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헌법위원회 합헌 결정 이후 법 공포까지 통상 하루나 이틀 간의 여유를 둔다는 관례를 깬 것으로, 연금개혁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마크롱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헌법위원회가 300명 이상 고용 기업의 고령자(55세 이상) 고용 의무화, 전체 직원수 대비 고령자 비율 공개 등 6개 조항에 대해 ‘부분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연금 수령을 위한 법정 연령(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2년 연장한다는 핵심 조항은 유지됐다. 정년 연장을 위해 사회보장재정법(PLFRSS)을 개정한 입법 방식이나, 법안 처리 과정에서 헌법 49조 3항을 발동해 의회 표결을 건너뛴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났다. 야당이 요구한 국민투표 요청 역시 반려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헌법위원회의 최종 결정이 늦은 시간에 이뤄졌음에도 6개 조항이 삭제된 연금개혁 법안에 서명하고 즉각 공포할 것을 지시했다. 이후 새 법이 전자 관보에 게재되면서 공포 절차가 마무리됐다. 프랑스 언론들은 서명까지 최장 2주 동안 기다릴 수 있었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며 “정부의 치밀한 입법 전략이 통했다”고 평가했다.
올리비에 뒤솝트 노동부 장관은 “새 법이 (헌법위원회의) 검증을 마쳤기 때문에 다른 법들과 마찬가지로 즉시 공포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정부는 새 연금개혁법이 예정대로 9월 1일부터 시행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밤중 도둑처럼 악법 공포”…야권·노동계 총력 투쟁 예고
야권과 노동단체 등은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 새 법이 공포된 것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지난 3개월 간 연금개혁 반대 시위를 주도해 온 노동총동맹(CGT) 등 8개 노동 단체는 자신들을 무시한 처사라며 “연금 개혁법 무력화를 위한 총력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CGT는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에 대혼란을 초래한 인물로 기록될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8개 노동 단체들은 긴급 회동후 오는 20일 ‘분노한 철도의 날’ 파업을 진행하고, 5월 1일엔 대규모 반대 집회를 열기로 했다.
정치권의 반발도 거세다. 극좌·극우를 불문하고 “마크롱 대통령이 한밤중에 도둑처럼 악법을 공포했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또한 야권은 정년을 64세에서 62세로 하향하는 내용의 ‘맞불 법안’ 발의도 검토하고 있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대표는 “연금개혁법의 정치적 운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마크롱 대통령에겐 국민투표, 의회 해산, 사임 등 세 가지 선택지만이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극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마뉘엘 봉파르 의원은 “마크롱 대통령의 유일한 선택지는 연금개혁법을 철회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도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힘을 모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프랑스24 등 현지 매체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베이징 방문 이후 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는 국제 사회의 비난에 직면한 시기에 연금개혁이 마무리됐다”며 “여론조사에선 3명 중 2명이 새 법에 반대하고 있다. 야권과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