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뿌리 깊은 민관 부패·비리의 사슬을 끊기 위해선 우선 공직자윤리 규정부터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퇴직관료의 재취업 제한을 공공기관 이외에 관련 민간협회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얘기다.
◇ 朴정부 ‘관피아’ 384명..산피아 64명 ‘톱’ 불명예
12일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이 17개 정부부처를 통해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각 부처에서 4급 (서기관) 이상 간부로 일하다 산하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관련 협회 등에 재취업한 퇴직관료 수는 384명에 달했다.
이 의원이 제출받지 못한 감사원과 지방자치단체 주요 간부와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 위원회까지 포함하면 5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 부처 가운데선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인 ‘산피아’가 64명으로 가장 많았다. 차관을 지낸 뒤 관련 기관 사장으로 활동하는 인사도 5명이나 됐다.
산업부에 이어 농림축산식품부와 국토교통부가 각각 42명으로 2위를 차지했으며, 해양수산부(35명) 문화체육관광부(32명) 보건복지부(31명) 환경부(27명) 고용노동부(27명) 법무부(24명) 등이 뒤따랐다.
전문가들은 산업부와 농식품부, 국토부 등은 직접적인 규제 수단이 많은 데다 산하 유관기관과 협회가 많아 퇴직관료들이 활동할 공간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산업부와 관련된 협회는 너무 많아 장관도 다 알지 못할 것”이라며 “어떻게든 협회나 조합을 만들어 사무관 한 사람이라도 확보하려고 하는 게 장사하는 사람들의 생리”라고 말했다.
◇ “민-관 비리·부패 사슬 끊는다”..관피아 개혁 어떻게
관피아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퇴직 관료들이 ‘관(官)’의 막강한 권력을 배경 삼아 협회나 공공기관에 기관장이나 임원 등으로 재취업해 민·관 유착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이른바 ‘해피아’의 경우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고위 관료들의 퇴직 후 유관기업 재취업 △대를 이은 자리보전과 관련 업계와의 공생 △특정학교, 고시 출신의 영향력 △검은 커넥션, 겉핥기 감독, 부실검사 등의 총체적 난맥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에 따라 현행 공직자윤리법의 전면적인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행법은 공무원이 ‘퇴직 전 5년 동안’ 근무했던 부서와 업무 연관성이 있는 사기업에는 ‘퇴직 일로부터 2년 동안’ 취업하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러나 정부 산하기관이나 국가·지방 사무를 위탁받은 민간 협회 등에는 퇴직 공무원의 취업이 가능하다. 또, 퇴직을 앞둔 공무원이 총무나 인사 등 사기업과의 업무연관성이 없는 부서에서 ‘경력세탁’을 할 때 ‘퇴직 후 2년’ 취업 제한도 피할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 법망에 구멍이 뚫린 셈이다.
이 교수는 “공직자들은 윤리법을 개정하더라도 다른 단서조항을 만들어 또 다른 방법을 써 피해 가려 할 것”이라며 “관피아를 없앨 근본적인 방안은 해당 조직이 필요한 사람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도 “현재 공직자윤리법은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퇴직관료가 5년 이상 관련 기관에 재취업하지 못하도록 법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퇴직관료의 재취업 감시장치 강화와 이를 위반했을 때 엄중한 처벌도 뒤따라야 한다며 행정고시 위주의 공무원 채용방식을 바꿔 민간 인재의 공직 등용문을 확대할 필요성도 제기했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관피아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형성됐다”며 “독립적이고 신망받는 인사를 내세워 관피아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개혁과정에서 국가공무원법(행정고시) 개정과 공직자윤리법(낙하산금지) 개정 가능성이 큰데 관료와 정치권의 유착도 끊도록 지속적인 감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고위공무원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도록 퇴직 후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아닌 고문이나 위원회 위원 등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정년을 못 채우고 중도탈락하는 고위공직자의 경력 관리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퇴직 고위관료가 산하 기관장이나 협회장으로 갈 때 유착 문제가 발생한다”며 “의사결정권자가 아니라 기관장 등에 조언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