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진우 기자] 지난달 패션업계에서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브랜드와 인력을 재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동안 분위기가 술렁였다. 패션업계 관계자들의 주된 반응은 “삼성 너마저…”였다. 대기업 계열의 패션기업도 흔들리는데 그룹사의 든든한 배경이 없는 중소 규모의 패션업체들은 도대체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느냐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올해 초 만난 업계 관계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버티는 게 목표”였다. 의욕적으로 브랜드를 출시하고 사업을 확장하기보다는 ‘일단 살아남자’는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비하겠다는 의미였다. 반년이 지났지만 여기서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오히려 어깨는 더 움츠러들었다.
시장환경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국내 패션시장의 규모는 역신장하는데 브랜드는 이미 포화상태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의식주(衣食住)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줄이는 게 ‘입는 것’이다. 마음이 위축될수록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쉬움이 드는 건 보수적으로 방어에만 급급하다 보면 언젠가는 버틸 체력마저 고갈될 수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걸 하기 어렵다면 ‘선택과 집중’을 하든, 마케팅·홍보에서 돌파구를 찾든 뭐든 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나하나 해나갈 때 내부동력이 생기는 법이다. 버틴다는 생각만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21년 된 남성복 ‘엠비오’와 지난해 7월 론칭한 잡화 ‘라베노바’ 사업을 접고 SPA(제조·유통 일괄의류) 브랜드인 에잇세컨즈를 집중육성하기로 했다. 패션그룹형지는 아웃도어 노스케이프를 철수하고 와일드로즈에 집중한다. 사업재편인지 구조조정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중요한 건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패션과는 달리 시장 변화에 가장 능동적이고 빠르게 대응해 위기를 기회로 삼은 것이 화장품 업계다. 한국의 화장품(K 뷰티)이 성공한 요인 가운데 ‘한류 열풍’이 큰 몫을 차지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업계 종사자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시장의 외연을 확장한 요인도 크다. K 패션도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은 갖춰져 있다. 성공을 위한 첫 발걸음은 업계를 둘러싸고 있는 무기력증을 떨쳐내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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