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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통신선 복원에도 정부 연락없어"…'北 피격공무원' 兄의 한숨

이용성 기자I 2021.10.05 15:05:18

4일 남북 통신선 55일 만에 재가동
'서해 공무원 피격' 兄 이래진씨 인터뷰
"北 연락해 죽음 밝혀야" 호소에도 '묵묵부답'
"통일부도 '남북 평화' 운운하며 거절해" 주장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지난해 9월 북한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습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고(故) 이모씨의 형인 이래진(55)씨가 4일부터 남북 통신선이 재가동된 소식을 듣고도 환영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7월 남북 통신선이 연결됐을 당시 “동생의 죽음에 대해 정부가 북한에 물어봐야 한다”고 했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이씨는 “문재인 정부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았다”고 푸념했다.

서해 북단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군에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가 14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해양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공개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이씨는 5일 이데일리와 전화통화에서 “정부가 북한에 (동생의 죽음과 관련) 언급을 하겠다고 말했는데 아직까지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1년이 지나도 진전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월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면담을 하며 북한 당국자와 면담 주선, 사건 현장 직접 방문 등 7가지 사항을 요구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앞으로 보내는 서한도 대신 전달을 부탁했다. 그러나 이씨는 “그 이후에 ‘못하겠다’는 취지로 통일부에서 얘기했다”고 이날 말했다.

지난 7월 남북 통신선이 잠깐 연결됐을 때 이씨가 당국에 연락하고 관련 언론 보도가 나오자 그제서야 통일부에서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취지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씨는 “내가 먼저 연락해서, 그것도 즉답이 아닌 보름 만에 답변을 받은 것”이라며 “정부에서 먼저 주체적으로 움직인 적은 한 번도 없고, 답변도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답변만 내놨다”고 설명했다.

4일 오전 9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및 군 통신선을 통해 55일 만에 통화가 이뤄졌다. 북한은 대북 전단 살포 등을 문제 삼아 일방적으로 끊었던 남북통신선을 13개월 만인 지난 7월 다시 복원했으나, 한미연합훈련 사전연습이 시작된 지난 8월 10일부터 연락을 끊었다. 이후 문 대통령이 UN 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하고, 김 위원장이 이에 화답하면서 전날 전격 남북 통신선이 재가동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서울 그랜드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제15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남북 통신선이 열려도 정부 당국에서는 지금까지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는 것이 이씨의 주장이다. 이씨는 “동생의 죽음을 밝혀달라 해도, ‘군사기밀’, ‘남북평화’, ‘주변국 간 외교 문제’를 이유로 변명만 늘어놨다”며 “체념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2일은 고인의 1주기였다. 이씨는 경기 안산시 자신의 사무실에서 추모식을 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한국시간)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6차 UN 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이씨는 이에 대해서도 “지난해 대통령은 단 한 명 국민의 생명을 지키겠다고 언급했는데 지금은 종전과 평화를 얘기하고 동생에 대해선 언급 한마디 없다”며 “참 나쁜 대통령이고, 거짓말만 일삼고 있다”고 분개했다.

이씨는 동생의 죽음을 밝히고, 정부가 당시 책임을 다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 행정소송을 냈다. 현재 서울행정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해당 재판은 오는 15일 2차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다. 앞서 국방부는 지난해 11월 “유가족 측이 요청한 정보는 군가기밀보호법상 비밀로 지정돼 정보공개가 제한된다”며 거절한 바 있다.

이씨는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직무유기, 살인 방조 등 법리를 검토해 문 대통령과 해양경찰청 관련자 등을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씨는 “평화의 가장 기본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한다”며 “더는 정부가 화가 나지 않게 했으면 한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9월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군의 총격을 맞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가 사망했다. 해경은 같은 해 10월 수사결과 발표에서 “고인이 사망 전, 총 7억원이 넘는 자금으로 도박을 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그가 채무로 인해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북한이 남북통신연락선을 복원한 지난 4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모습.(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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