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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최근 반도체를 사용하는 제품들의 가격이 일제히 올랐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그러면서 “개인용 컴퓨터(PC)와 노트북, 프린터 및 주변기기 등 각종 전자제품 가격이 줄줄이 인상되고 있으며, 스마트폰 가격도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
가격 인상은 각종 전자제품에서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미 정부 데이터에 따르면 컴퓨터 및 기타 전자제품 가격은 지난 5월 연간 2.5% 상승했다. 이는 10년래 가장 큰 인상폭이라고 WSJ는 설명했다. 또 가격 추적 사이트 키파(Keepa)에 따르면 아마존은 이번 달부터 대만의 컴퓨터 제조업체 아수스(ASUS)의 인기 랩톱 모델 가격을 900달러에서 950달러로 50달러 올렸다.
휴렛팩커드(HP)는 가장 인기 있는 크롬북 가격을 이달초 220달러에서 250달러로 30달러 높였다. HP는 지난 1년 동안 PC 가격을 8%, 프린터 가격을 20% 각각 인상했다.
엔리케 로레스 HP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 등 부품 부족으로 제조 비용이 늘어났고 소비자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며 “추후 추가적인 가격 조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PC 제조업체들도 가격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델 테크놀로지의 토머스 스위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부품 비용 증가를 고려해 적절하게 가격을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각종 제품 가격이 오르는 것은 반도체칩 가격 인상 자체가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의 반도체 부족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일제히 생산량을 대폭 늘렸는데, 이러한 수요 급증이 실리콘웨이퍼를 비롯한 각종 금속 소재 등 반도체칩을 만드는 재료 가격을 끌어올렸다.
반도체 제조업체 아날로그 디바이시스의 빈센트 로세 CEO는 “반도체 부족 현상을 틈타 가격을 올려 이익을 늘리려는 것이 아니다. 반도체 생산에 드는 비용 자체가 늘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형 반도체칩 제조업체들이 가격을 올리기 시작하면 PC 및 주변기기 등 전자제품 제조업체들도 비용 인상분을 반영해 가격을 높일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향후 도미노 가격 인상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재택근무가 일상화하는 등 업무 환경이 변하면서 PC 및 비디오게임 등의 수요가 급증했는데, 이 역시 가격 인상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도체 판매량에서도 수요 증가세가 뚜렷하게 확인된다. 지난해 1월 전세계적으로 판매된 반도체 수는 약 730억개였으나, 올해 4월엔 약 1000억개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도체 제조업체부터 PC 등 전자제품 제조업체, 그리고 소매판매 업체들까지 줄줄이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 일시적 현상이 아닐 수 있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국제유가 등 에너지 가격까지 상승하면 이를 반영한 소비자 가격이 지금보다 더 오를 수 있다는 진단이다.
전자부품업협회(ECIA)의 데일 포드 수석 애널리스트는 “반도체칩 제조 비용 증가에 따른 소비자 가격 인상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앞서 세계 3위의 전자제품 위탁생산업체 플렉스도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적어도 1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며 “자동차 및 소비자 가전제품 제조업체들은 글로벌 공급망을 재검토해야하는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자동차 업계의 경우 2차 가격 인상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반도체칩 부족으로 최근 생산량을 대폭 줄였는데, 싼 가격에 미리 반도체칩을 확보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더 비싸진 반도체칩을 구매해 차량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각 제조업체들이 제품 출시 가격을 높이더라도 이를 판매하는 소매업체들이 마진을 줄여 비용 증가분을 흡수하면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WSJ는 설명했다. 이어 이미 일부 업체들은 가격을 올리지 않는 대신 할인을 없애는 방식으로 가격 인상을 억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