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기소된 홍준표(60) 경남도지사의 첫 재판에서 변호인과 검찰이 건건이 부딪히며, 앞으로 재판에서 치열한 법리 공방을 예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현용선) 심리로 23일 열린 첫 재판에서 홍 지사의 변호인은 검사가 공소사실을 밝히자 “장황한 말씀 잘 들었다. 피고인은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에게서 1억원을 받은 사실이 없다. 공소사실 일시와 장소에서 윤씨를 만난 사실도 없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공소장에 피고인이 2011년 6월 일자불상에 돈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며 “특정할 수 있는지, 특정할 것이라면 언제 할 것인가”라고 검사에게 물었다. 검사는 “사건이 발생한 지 오래돼 관련자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 날짜를 특정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하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홍 지사가 2011년 6월19일 한나라당 당 대표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시점을 기준으로 시기를 특정하라고 검찰에 명령했다.
홍 지사의 변호인이 범행을 자백한 윤씨의 진술조서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검찰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홍 지사 쪽에서 윤씨를 회유한 게 확인된 바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씨에 대한 진술조서를 열람 등사하는 것은 증인신문이 임박한 시점에 이뤄지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했다.
홍 지사의 변호인은 “윤씨의 진술조서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다른 증거에 대한 판단이 늦어지게 돼 전체적으로 피고인의 방어계획을 짜는 데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홍 지사는 윤씨를 회유하도록 지시하거나 관여하지 않았다”며 “윤 씨의 발언이 검찰을 통해 언론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됐는데 회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반박했다. 또 “이 사건은 정치적인 사건이다. 수사 당시 홍 지사만 문제 된 게 아니라 범 정치인이 연루돼 있었다”며 “홍 지사와 무관한 관련자가 윤씨를 만난 것으로 안다”고 강조했다.
이에 검사는 “윤씨를 회유한 사람이 홍 지사와 무관한 인물은 아니다”고 맞받았다. 재판부는 검찰에 윤씨의 진술조서를 변호인에게 제공하도록 지시했다.
이와 함께 검사는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라서 속된 말로 사건이 오염될 수 있다”며 “재판을 신속히 진행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홍 지사의 변호인은 “윤 씨의 진술을 보지 못해서 막막한 상황”이라며 “검찰이 지금 당장 신속한 재판을 강조하더라고 현실적으로는 신속히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홍 지사와 함께 기소된 윤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은 수사단계부터 한결같이 공소사실을 자백하고 있다”며 “홍 지사에 대한 악감정이나 유감은 없으나, 정치자금을 건넨 사실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이라 번복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어 “윤씨는 폐암수술을 받고 폐를 절단해 건강이 좋지 않다”며 “변론을 분리해서 심리를 진행해달라”고 했다.
이날 재판에 윤씨만 출석했고, 홍 지사는 나오지 않았다.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이 꼭 출석할 필요는 없다. 두 사람 모두 국민참여재판은 원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공판준비절차를 한 차례 더 열고 앞으로 심리계획을 짤 예정이다. 다음 재판은 다음 달 26일 오전 11시에 열린다.
홍 지사는 2011년 6월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윤씨를 만나 고 성완종 회장이 건넨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윤씨는 이 돈을 전달한 혐의로 각각 기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