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동의없이 교과서 고치고 몰래 도장…교육부 과장 혼자 했겠나"

신중섭 기자I 2019.06.26 13:57:59

초등 6학년 사회교과서 집필책임 박용조 교수
"내가 교과서 수정 요구한 걸로 돼 있어 황당"
"교육부, 직접 계약 안한 他집필자 통해 수정시켜"
"고발당한 3명이 고쳤다는 건 말 안돼"…윗선개입 시사

박용조 진주교대 교수.


[이데일리 신중섭 기자] 교육부가 지난 2017년 책임집필자의 동의 없이 초등학교 국정 사회교과서의 내용을 수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기존에는 1948년이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기술됐지만 수정 후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기술됐다. 이에 지난 5일 대전지검은 당시 교육부 교과서정책과장과 교육연구사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사문서위조교사, 위조사문서행사교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교육부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맞지 않게 기술된 내용이 있어 교육과정 취지와 내용에 부합하도록 수정했다는 입장이다. 또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및 국정도서 위탁계약서에 따라 관련 절차를 진행했고 역사교육 전문가 등의 의견수렴을 거쳤다고 주장한다.

당시 해당 교과서의 책임집필자였던 박용조 진주교대 교수는 26일 오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교육과정에 관한 교육부의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집필책임자의 동의 없이 절차를 무시하고 진행한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원칙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현재 재판에 넘겨진 관계자들 이상의 윗선 개입이 있지 않았겠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문제된 부분이 무엇인가?

△교과서 출판 편찬과정은 두 가지로 나뉜다. 초판을 만드는 과정과 초판 배포 후 오탈자가 발견되거나 민원이 발생한 사항에 대해 수정·보완하는 과정 등이다. 지금 문제가 된 건, 2016년에 만들어진 초판을 2016~17년 2년 가까이 잘 쓰던 중 지난 2017년 9월, 교육부가 갑자기 일부 내용에 대해 수정요구를 한 것이다. 당시 책임집필자인 나는 수정요구를 거부했는데 2018년 교과서를 확인해 보니 동의 없이 수정이 돼 있었다.

-당시 교육부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요구를 했나

△2017학년도 초등사회 6학년 1학기 교과서 중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돼있는 부분을 2009년 교육과정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수정해달라고 했다. 나는 새로 나온 2015 개정 교육과정에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돼 있는데 어떻게 구버전(2009 교육과정)으로 바꾸냐고 당시 연락을 줬던 교육연구사에게 화를 냈다. 그 시점이 9월 초인데 이후 일체 연락이 없었다.

-교과서 수정 절차가 어떻게 되나.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 건가.

△수정을 위해선 협의회 협의록이 있어야 한다. 원래 협의회가 모여서 협의록을 만들고 거기서 책임자가 수정대조표를 확인해 도장을 찍으면 출판사가 이 협의록을 교육부에 보내 승인요청을 한다. 근데 현실적으로 한 자리에 관계자들이 다 모이기가 힘드니까 편의상 출판사가 책임자에게 수정대조표를 먼저 보내준다. 책임자가 동의할 경우 도장을 찍어주고 출판사는 이를 가지고 협의록을 만들어 교육부에 승인요청을 하는 거다. 그런데 이런 동의 과정이 생략된 거다. 그전까지의 교과서 수정과정에서는 무조건 내 동의를 얻어왔는데 문제가 된 교과서만 내 동의 없이 도장을 몰래 찍은 거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수정된 사실은 어떻게 알았나.

△2018년 3월 한 언론사 기자가 “교과서 내용이 바뀌었는데 책임자로 말씀 부탁드린다”면서 교과서 수정대조표에 대해서 말해주더라. 같은 달 6일 한 초등학교 가서 교과서를 보니 해당 내용을 포함해 213곳이 수정된 사실을 알았다. 더욱이 수정대조표에는 편찬기관인 내가 수정 요구를 해서 수정했다고 나와있었다. 황당했다.

-고발은 어떻게 됐나.

△자유한국당과 변호사단체에서 고발하고 나는 참고인으로 계속 불려갔다. 참고인으로 사실관계만 말했다. 당시 담당과장과 교육연구사, 출판사 관계자 등이 고발당했는데 상식적으로 근현대사와 같은 예민한 부분을 세 명이서 고쳤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연구사나 출판사 관계자가 무슨 힘이 있겠나. 과장이 목숨 걸 일 있겠나.

-교육부의 말대로 문제가 된 2017년 교과서는 2009 교육과정의 적용을 받는다. 그러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서술돼야 하는데 왜 해당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서술돼있나.

△(교육부의 이야기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교육과정 적용 부분은 그 말이 맞다. 이에 앞서 과거를 설명하자면, 2015년 하반기에도 교육부가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돼있던 기존의 내용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꿔달라 했다. 나는 그때도 못 바꾸겠다고 했다. 왜냐면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서술해야 하기 때문에 ‘대한민국 수립’으로는 못 바꾼다고 했다. 그러다 2015년 말 ‘2015 개정 교육과정’이 확정고시 되면서 다시 교육부가 부탁을 하더라. “새로운 교육과정이 이렇게 됐으니 고쳐주십시오” 하고. 내 입장에서는 새로운 교육과정이 나왔는데 옛 것을 그대로 쓴다고 고집한다는 게 궁색했다. 못 쓴다고 계속 버티다가 “그러면 좋다. 교육과정 이렇게 개정됐으니까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꿔보겠다” 하고 바꾼 거다. “2018년까지는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을 적용해야 하는데 무슨 소리냐” 하고 우길 수도 있었겠지만 새로운 교육과정이 확정돼버리니까 할 말이 없더라.

-교육과정에 맞지 않게 수정해도 문제가 없는 건가.

△법적 하자는 없는 걸로 안다. 그렇다고 2015년 교육과정을 근거로 해서 전체를 다 수정한 건 아니었다. 당시 교육부에서는 다른 건 요구하지 않고 ‘정부’가 들어가냐마냐 하는 부분만 요구했다. 나는 버티다가 할 수 없이 그 부분만 숙고해서 수정한 것이며 심의위원장과도 논의 끝에 수정했다.

-정리하자면 2015년 하반기 당시 교육부가 교과서 내용 중 ‘정부’를 빼달라며 수정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서는 거부를 해오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확정고시가 된 후에 다시 연락이 왔고 이것도 거부하다가 결국 심의위원장과의 논의와 숙고 끝에 수정한 게 당시 2017년 교과서라는 말인가.

△맞다. 그 교과서가 2016년 초에 수정돼 2016~2017년 교과서에 적용됐다.

-교육부에서는 다른 집필진에게 수정·보완 과정에서의 절차상 권한 일부를 담당하게 해 수정한 것으로 안다. 이 부분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문제가 크다. 교육부는 나와 계약을 했다. 다른 집필진에게 권한을 이양한다는 규정은 집필약관에도 없고 계약서에도 없다. 연구책임자는 나 1명이고 나와 계약한 것이다. 다른 집필자들은 책임집필자인 나와 계약을 한 것인데, 교육부가 임의로 담당하게 한 것이다.

-심경은.

△교육부가 주장하는 ‘교육과정 적용’ 부분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과정에서 집필책임자의 동의 없이 절차를 무시하고 진행했다는 부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황당하고 화가 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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