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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저녁 7시 반이 좀 넘었을 거에요. 맥도널드 매장에 있었는데 ‘우당탕탕’ 소리가 나기에 주방에서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알았죠.”
늦은 여름휴가를 맞아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함께 경주 관광을 와 있던 회사원 차모(43)씨는 “햄버거를 먹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매장에서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그가 느낀 진동은 본진에 앞서 7시 44분쯤 일어난 전진(규모 5.1)의 영향이었다.
◇놀란 리조트 고객들 ‘엑서더스’…뉴스 속보 보며 뜬눈으로 밤 지새
차씨가 보문로에 있는 숙소(대명리조트)에 돌아와보니 객실 손님들은 짐을 싸 로비에 다 나와 있었다. 사람들이 ‘무슨 날벼락이냐’며 웅성웅성 하던 그 순간 한층 강한 진동이 다시 들이닥쳤다.
“아이들은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고 완전 아수라장이었죠.”
리조트 측에서 퇴실 권고 방송을 하자 사람들은 차에 짐을 싣고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밤 11시가 되자 그를 포함해 객실(패밀리형 240)에는 3곳만 남았다. 리조트 측은 객실을 5층에서 저층인 2층으로 바꿔주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던 그는 차를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리조트 로비 근처로 옮긴 뒤 아들과 차 안에서 잠을 청했다. “와이파이(Wi-Fi)로 계속 뉴스 속보를 보면서 자는 둥 마는 둥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고 했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 주민들도 밤새 불안감에 떨긴 마찬가지였다.
황성동에 살고 있는 권모(56)씨는 “TV를 보다 갑자기 ‘우르릉’ 소리에 가스라도 폭발한 줄 알고 놀라 창 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다 나와 있었다”며 “피해는 특별히 없었지만 아파트 옆동 엘리베이터에는 사람이 한 명 갇히는 바람에 119가 출동하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권씨는 “넓은 공원이나 학교로 가려는 사람들이 차를 끌고 한꺼번에 나오는 바람에 한밤 중 도로 교통이 완전히 마비됐다”고 전했다. 아파트 인근에 있는 유림초등학교 운동장은 순식간에 지역 주민 수백 명의 대피소로 변했다.
충효동에 거주하는 안모(46)씨는 “20년 가까이 경주에 살면서 이런 지진은 처음”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씨는 “조금 전까지도 흔들림을 느낄 정도로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먹통’ 재난문자에 주민들 ‘분통’…한가위 설렘은 어쩔 수 없어
진앙과 가장 가까운 곳의 내남면 주민들이 느낀 공포감은 더했다. 내남면 부지2리 이장 박종헌(61)씨는 “우사(牛舍)에서 소를 돌보고 있는데 갑자기 땅과 우사가 심하게 흔들리더니 집 안 집기가 마구 떨어져 주민들에게 ‘마을회관으로 대피하라’고 긴급 방송을 했다”며 “큰 지진은 지나갔지만 여진이 이어져 밤새 집에 들어갔다 다시 나왔다 하는 일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황급히 집 밖으로 대피했던 주민들은 마을 회관이나 차 안에 머물며 두려움에 떨어야했다. 박씨는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이 된 뒤 오전 2시쯤이 돼서야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지진 여파로 담벼락이 무너지고 기왓장이 떨어진 일부 지역의 주민들은 집 보수에 여념이 없었다. 3~4일간 여진이 이어질 수 있다는 기상청예보에 경주시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은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 등 문화재 피해 상황을 점검 중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지진 영향에 따른 첨성대 기울기와 틈새의 변화를 측정하고 있다”며 “미세하지만 지진의 영향을 입은 흔적은 있다”고 설명했다.
전례 없던 강진 피해에도 온 가족이 모이는 한가위를 맞는 설렘은 어쩔 수 없었다.
김영환(69·여)씨는 “난생 처음 겪은 일이지만 큰 피해가 없어 다행”이라며 “지난 설에는 아들 녀석(40) 회삿일 때문에 못 내려왔는데 이번엔 손주들을 데리고 온다 하니 빨리 장에 가서 음식 장만해야겠다”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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