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온 훤칠한 키의 청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한국말로 또박또박 인사말을 전했다. 어머니의 나라 한국을 처음 찾은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27)다. 구스비는 오는 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리사이틀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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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비는 재일교포 3세인 한국계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24살이던 2020년 유명 클래식 레이블 데카(Decca)와 전속계약을 맺으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바이올린 거장 이차크 펄만의 대표적인 제자이기도 하다.
처음 악기를 배우기 시작한 건 7살 때부터다. 자식들의 교육에 열성적이었던 어머니의 제안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매일 3시간씩 연습하는 것이 싫었지만,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구스비를 붙잡고 연습을 시켰다. 구스비는 “연습이 먼저였지만, 연습을 마친 뒤엔 어머니가 농구도 하고 게임, 만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줬다”고 말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011년, 이차크 펄만이 주최한 여름 음악학교에 참여하면서다.
“처음엔 펄만에게 기교적인 부분을 많이 질문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펄만이 저에게 제가 연주하는 음악의 의미는 무엇인지 물었죠. 대답을 하지 못했어요. 펄만은 ‘기교는 무의미하다. 음악으로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먼저 깨닫고, 그것을 말하기 위해 기교를 갈고 닦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지금 제가 다른 이들을 가르칠 때 강조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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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를 통해 2021년 발표한 데뷔 앨범 제목이 ‘루츠’(Roots, 뿌리)인 이유도 그 연장선에 있다. 작곡가 윌리엄 그랜트 스틸 등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곡가의 작품을 조명한 앨범이다. 이날 발매된 두 번째 앨범 ‘브루흐·프라이스’ 또한 아프리카계 여성 작곡가 플로렌스 프라이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수록했다.
구스비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고통 받는 소수, 약자에 대한 경험을 주시하게 된 만큼, 음악에서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곡가처럼 그동안 더 알려진 작곡가의 작품을 주목해야 한다”며 “기회가 된다면 한국, 일본 작곡가의 작품도 발굴해 연주하고 싶다”고 말했다.
구스비는 이날 간담회에 앞서 바흐의 바이올린 무반주 소나타 1번 1악장, 2악장을 연주했다. 구스비가 연주한 악기는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구스비가 삼성문화재단의 악기 후원 프로그램 ‘2023 삼성 뮤직 펠로우십’에 선정돼 올해 초 대여 받은 악기다. 구스비는 이 악기에 ‘타이거’라는 별명을 붙였다. 좋아하는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의 이름에서 따왔다.
“바이올린만큼 골프도 좋아해서 어딜 가나 골프채를 가지고 다녀요. 골프와 바이올린은 정신력, 집중력을 컨트롤 해야 한다는 점이 닮았죠. 무엇보다 연습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연습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바이올린과 골프는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기회가 되면 골프를 치고 싶습니다. 스크린 골프라도 좋아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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