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전날부터 대구경포와 탱크, 전투기 등을 동원해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며 아조우스탈 제철소 진입 작전을 펼치고 있다. 외신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오는 9일 전승절(제2차 세계대전 승리 기념일)까지 마리우폴을 함락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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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군의 격렬한 저항
러시아군이 쉽게 아조우스탈 제철소를 점령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우크라이나군의 격렬한 저항 때문이다. 제철소에서 항전 중인 병사들은 국경 경비대 소속인 아조우연대 대원과 방위군, 경찰들이다.
러시아는 지난 3월 말 마리우폴을 포위한 이후 마리우폴의 방어군을 향해 끊임없이 항복을 종용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날도 푸틴 대통령은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제철소에서 전투를 이어가는 병력들이 무기를 내려놓을 수 있도록 명령해야 한다”며 항복을 촉구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와 마리우폴의 최후 방어군은 이를 거부하며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끝까지 저항해오고 있다. 데니스 프로코펜코 아조우연대 사령관은 전날 “러시아군이 제철소 단지 안으로 침입해 이틀 동안 ‘혈투’(bloody battles)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은 스비아토슬라우 팔라마르 부사령관이 텔레그램을 통해 “중대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옛 소련이 지은 요새형 구조
아조우스탈 제철소의 독특한 설계와 구조도 방어군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도록 기여했다. 아조우스탈 제철소는 유럽에서 가장 큰 철강 공장이다. 여의도 면적의 4배에 달하는 약 11㎢ 규모다.
옛 소련 시절 건설돼 1933년 생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도중 1941~43년 나치 독일군에 점령당해 폐허가 됐고, 이후 재건 작업을 거쳐 1944년 재가동됐다. 이번 전쟁 이전엔 연간 400만톤(t)의 철강과 350만t의 용탕(금속을 가열해 녹인 것), 120만t의 압연제강을 생산했다.
이에 제철소 내부엔 용광로, 철로, 굴뚝, 지하터널 등을 비롯한 생산설비가 빼곡하다. 특히 지하에는 최대 깊이 30m, 길이 20km가 넘는 터널이 미로처럼 펼쳐져 있다. 이같은 구조와 설비들은 전쟁 이후 제철소를 요새처럼 변모시켰다.
친(親)러 분리주의 단체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고문인 옌 가긴은 러시아 국영매체인 리아노보스티에 “이 제철소는 핵전쟁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됐고, 통신 시스템도 방어 측에 유리하게 내장돼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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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 현행범 우려
제철소 내부에 아직 다수의 민간인이 생존해 있다는 점도 러시아군이 무차별 공격을 강행하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앞서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키이우 인근 부차 등의 지역에선 민간인 학살 정황이나 증언들이 확인됐지만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다. 이에 러시아 역시 관련 혐의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아조우스탈 제철소는 다르다. 내부에 민간인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고, 서방을 비롯한 전 세계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현재 민간인 약 200명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 군인들과 함께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인을 공격하면 러시아가 앞서 주장했던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 또는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루네츠크인민공화국(LPR) 보호 등 침공 명분이 무색해진다. 아울러 민간인 학살은 전쟁범죄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그동안 민간인 대피 통로를 열기로 합의한 뒤에도 항상 공격을 지속해 왔다고 비판해 왔다. 크렘린궁은 매번 공격 사실을 부인했다.
마리우폴의 우크라이나군 제36해병여단 지휘관인 세르히 볼로나 소령은 지난 달 19일 워싱턴포스트(WP)와의 위성전화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항복 요구를 거부한 이유에 대해 “(민간인 대피를 돕겠다는) 러시아군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