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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 운하 뚫렸지만…물류 정상화 난항·치열한 책임공방 '후폭풍'

방성훈 기자I 2021.03.30 14:26:51

좌초한 에버기븐호 부양 성공…자체 엔진으로 이동
일단은 안도했지만…“물류 정상화까진 아직 멀어”
천문학적 보험금에…사고원인·책임소재로 시선이동
피해 선박 400척 넘어…하루 배송손실 90억달러 이상
선사·선주·보험사 치열한 소송 예상…"수년 걸릴수도"

(사진=AFP)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방성훈 기자] 이집트 수에즈 운하가 7일 만에 다시 열렸다. 운하 물길을 막았던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완전히 물에 떠오른 후 이동하면서다. 수에즈 운하는 아시아~유럽간 최단 거리 뱃길로 세계 교역의 핵심이다. 세계 경제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간 대기하고 있던 수백여척의 선박이 한꺼번에 움직이게 되면 병목현상 등으로 물류대란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우려된다. 아울러 막대한 보험금 지급 여부가 걸려 있는 만큼 에버기븐호의 좌초 원인 및 책임 소재 등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해상 물류 핵심 수에즈 운하…7일 만에 뚫려

29일(현지시간)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집트 수에즈운하관리청(SCA)은 이날 에버기븐호 선체가 완전히 부양하는데 성공하면서 운하 통항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에버기븐호는 수에즈 운하 한가운데 있는 넓은 공간인 그레이트비터호로 이동 중이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이집트는 엄청난 기술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수에즈 운하에서 선박이 좌초한 위기를 끝내는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SCA는 지난 일주일간 수에즈 운하를 가로막고 있던 에버기븐호를 부양해 양쪽 제방과 나란히 세우며 정상적인 항로로 정위치 시켰고, 그 이후 선박은 수로와 거의 평행한 상태로 그레이트비터호 쪽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버기븐호는 자체 동력을 이용해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버기븐호는 지난 23일 수에즈 운하 남쪽 입구에서 6㎞ 떨어진 곳에서 좌초됐다. 너비 59m, 길이 400m, 22만t 규모로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비슷한 길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컨테이너선 중 하나여서 후폭풍은 더 컸다. 이 선박은 중국에서 출발해 네덜란드로 향하는 중 사고를 당했다. 대만 해운사 에버기븐 마린이 선박을 운용하고 있으며, 소유주는 일본의 쇼에이키센이다.

사고 직후 예인선 8척이 투입돼 선체 부양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그 이후 부양 작업에 난항을 겪었다. 그 사이 수에즈 운하를 지나야 할 선박들의 발이 묶이며 물류 대란이 일었다.

◇일단은 안도했지만…“물류 정상화까진 아직 멀어”

세계 경제는 그나마 안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백로그(지연 사태)로 당분간 정체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운하가 뚫릴 때까지 대기하고 있는 선박들이 워낙 많았던 탓에 이들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시간도 지체될 것이란 전망이다.

나아가 네덜란드 로테르담, 앤트워프 등 각 선박들의 목적지인 항구에서도 연쇄적으로 대기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화물을 하역하기까지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현재 운하를 통과하기 위해 대기 중인 선박은 최소 367척에 달한다.

공급망관리협회(ASCM)의 더글라스 켄트 수석 부회장은 CNBC에 “좌초된 선박이 풀려나고 수에즈 운하 차단이 해제된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라며 “결과적으로 백로그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스이스턴대학교의 스티븐 플린 정치학과 교수도 “이 정도 규모의 1주일 운송 차질은 상황이 정리되고 정상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최소 60일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SCA의 오사마 라비 청장은 “업계 베테랑들이 백로그를 정리하는데 더 오래 걸릴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지만, 대략 3일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낙관했다.

(사진=AFP)
◇천문학적 보험금에…사고원인·책임소재로 시선이동

이제 시선은 사고 원인 규명과 책임 소재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난해 기준 약 1만 8800여척의 선박들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고로 하루에 약 51.5척의 선박이 이 곳을 지나가지 못한 셈이다.

이에 따라 시간당 약 4억달러(약 4500억 원) 어치의 물류 운송이 지체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하루 배송 손실만 90억달러(약 10조 2000억원) 이상으로 집계되는 상황이다.

이번 사고 원인이 인재인지 자연재해인지, 또 인재의 경우 누구의 잘못인지 등 책임 소재에 따라 천문학적인 금액의 보험금 액수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아직까진 사고 당시 불었던 강풍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WP)는 이집트 당국이 선장과 항해사의 운항실수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고 조사를 담당하는 SCA는 기상 상황에만 집중하지 않고 인적, 기술적 실책도 조사 범주에 포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집트 정부의 통행규정에 따라 수에즈 운하 통과시 각 선박은 10만∼30만달러(약 1억∼3억원)의 통항료를 내야 하며, 의무적으로 이집트인 전문항해사를 태워야한다. 사고 당시 에버기븐호에도 수에즈 운하 통항경력만 30년이 넘는 베테랑 전문항해사가 탑승해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문항해사의 선내 책임과 역할이 모호한데다, 이집트 법에서는 수에즈 운하 운항 도중 벌어진 사고 원인이 이집트인 전문항해사의 실수라고 해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다는 내용이 포함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선장의 책임으로 결론이 나면 향후 선사와 선주, 보험사 간 치열한 소송전이 예상된다. 에버기븐호나 운항을 멈춘 다른 배에 실린 화물 소유주들이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면 이들 보험사는 다시 에버기븐호 선주에 손실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에버기븐호 선주는 다시 보험사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해상에서의 손실 비용에 대해 소유주와 보험업자가 공동으로 분담하는 이른바 공동해손이 선언되면 보험금 지급 등이 복잡해지면서 절차가 완료되기까지 수년이 소요될 가능성도 있다.

에버기븐 측은 “에버기븐호가 본격 항해 재개 전에 안전한 항해를 하기 위한 조건을 갖췄는지를 확인하는 ‘감항성(seaworthiness)’ 검사를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선박에 실린 2만개 가까운 화물 컨테이너 처리는 검사 이후에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선박의 기술관리회사인 버나드슐테선박관리(BSM) 역시 “에버기븐호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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