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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ily리포트)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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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용 기자I 2003.03.20 18:57:20
[edaily 문주용기자] 현대에는 영웅이 없다고들 합니다. 신화에만 남아있는 영웅은 대체로 의롭고 공정하고 관대한 모습입니다. 그들은 진중하게 움직이고, 한번 움직이면 끝장을 봅니다. 미국은 한때 국제사회의 영웅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영웅이 본색을 드러내며 "악의 화신"처럼 심하게 일그러졌습니다. 그 옆에서 알랑대는 똘마니도 눈에 밟힙니다. 산업부 문주용 기자의 얘깁니다. "엄석대"라는 영웅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이었습니다. 그 일인은 5학년 담임선생님이었습니다. 그는 만인지상인 엄석대에게 자신의 권한 모두를 위임합니다. 그는 선생님을 대신해 출석도 부르고, 잘못한 아이에게 체벌도 했으며, 같은 반 애가 갖고 있는 라이터를 빼앗고도 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가 반장으로 있는 한 사고는 없었고 반 전체 성적도 우수해서 담임은 엄석대의 리더십을 극구 찬양합니다. 그의 일방적 리더십에 적이 거부감을 갖고 있는 나, "한병태"는 "절대권위" 엄석대의 비행을 알게됩니다. "박원하"라는 엄석대와 가깝고, 수학을 특히 잘하는 아이가 시험지에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엄석대의 이름을 적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입니다. "다른 애들도 다 그러니까. 거기다가 석대는 차례를 공정하게 돌리기 때문에 손해는 모두 비슷해. 따라서 석대만 빼면 우리끼리의 성적순은 실력대로야" 나중에 엄석대는 새로운 6학년 담임선생님에 의해 영웅에서 타도의 대상으로 추락합니다. 새 선생님은 민주적 절차와 방법을 도입해 "영웅이 없이도 평화는 가능하다"는 듯 그를 철저히 배제한 채 새 질서를 만듭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작가 이문열씨의 단편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입니다. 부패가 심했던 자유당 정권 말기 초등학교 교실에 4.19 시대의 상황을 압축했습니다. 아프카니스탄, 알바니아, 호주, 아제르바이잔, 불가리아, 콜롬비아, 체코, 덴마크, 엘살바도르, 에리트레아, 에스토니아, 에티오피아, 그루지아, 헝가리, 이탈리아, 한국, 일본, 라트비아, 라투아니아, 마케도니아, 네덜란드, 니카라과, 필리핀,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스페인, 터키, 영국, 우즈베키스탄. 무슨 명단인지 아시죠. 우리의 일그러진 영웅, "미국"에 의해 동원된 나 "한병태"들이고,그 "박원하" 들입니다. 이름조차 생소한 나라도 있지만 대부분 동원된게 틀림없어 보입니다. 미국이 만들어 놓은 질서에 오랜동안 길들여져온 일본, 한국도 있습니다. 미국은 이들의 지지를 받아 오늘, 사담 후세인 한사람과 2300만명이 살고 있는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독재자이며 전쟁광인 후세인 아래서 많은 이라크 민중들이 수십년째 힘겨운 생활을 해왔기에 그를 제거하는 것이 옳은 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잘못된 일마다 다 나설 순 없는 일이며 목적 달성을 위해 모든 것이 뒷전이 되어야 하는 법도 없습니다. 이라크 국민의 많은 희생을 우려하는 인도주의 관점도 충분히 감안해야 할 것이고, 유엔과 국제법이 정하는 규정에 따라 전쟁을 할 경우에만 정당성을 인정하는 국제사회의 약속을 먼저 따라야 합니다. 이는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지구상 수천만명의 희생 끝에 간신히 마련된 국제사회의 약속이며 지구촌 공동체 의식 그 자체입니다. 대량살상무기를 확인할 시간을 일부러 주지 않은 채 침공을 한 것은, 설사 사후 정당화되더라도 국제법 위반라는 지적이 국내외 지식인들 사이에 우세합니다. 때문에 유엔 헌장을 어긴 미국과 영국은 전범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런데도 우리 정부는 오늘 이라크 침략을 지지하며 건설공병 및 의무병대도 파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것이 국익에 가장 부합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수 만명이 죽게 될 참상을 예감하는 상황에서 침략전쟁 지지 명분으로 "국익"을 내세우는 건 지나치게 이기적이어서 천박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적게 손해 볼려면 네가 좀 다쳐도 어쩔 수 없다? 죽은 사람 앞에서 "내가 네 몫까지 살아주마"라며 악어처럼 눈물흘린다? 우리의 이익과 손해도 충분히 고려해야겠지만 좀 더 숭고한 가치 기준에서 이 결정이 내려지지 못한데 대해 아쉬움이 큽니다. 국익의 활개가 전쟁의 근본 원인이었기에 국제사회는 "평화"라는 좀더 높은 가치를 내세워 국익을 양보키로 합의했는데, 우린 오히려 "국익"을 전면에 드러내며 평화가 깨지는 것을 외면하는 꼴이 됐습니다. 설사 지지할 수 밖에 없었다 해도 그 명분을 좀 더 고상하게 다듬어야 했었다는 생각입니다. 침략 전쟁을 지지하고 파병까지 하면서 전범의 똘마니가 되는데도 죄의식조차 못가지는 건 국익이라는 단 열매 때문일 겁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나 한병태가 엄석대의 가짜 시험지 사건을 선생님께 고발하지 못하고 그의 비행을 눈감아버리는 장면입니다. "그때는 이미 두 달 가까이나 맛들인 굴종의 단 열매나 영악스런 타산도 나를 말렸다. 사실 이런저런 어른들 식의 정신적인 허영을 빼면 석대의 질서 아래 있다고 해서 내게 불리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말했듯, 나의 끈질기고 오랜 저항은 오히려 훈장이 되어 내게 여러 가지 특전으로 되돌아온 까닭이었다." 몇달간의 저항끝에 우린 훈장을 탔고, 혹시 특전까지 기대하고 있습니까. 6학년 담임선생님은 엄석대는 물론이고 그 질서에 굴종하며 살았던 나 한병태까지도 심하게 꾸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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