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이윤택 구속영장 발부 당연, 제대로 처벌돼야"

장병호 기자I 2018.03.21 14:54:26

서울지방경찰청 21일 사전구속영장 신청
연극인, 구속은 당연한 조치 ''한 목소리''
"위계 통한 성폭력 묵인 관행 돌아봐야"

극단 단원들에 대한 성폭력 혐의를 받고 있는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에 이틀 연속 출석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bink7119@).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연극연출가 이윤택에 대해 경찰이 성폭력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로 했다. 연극인들은 “구속영장 발부는 당연한 조치”라며 “제대로 된 법적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서울지방경찰청 성폭력범죄특별수사대는 21일 이윤택 연출에 대해 상습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한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상습성이 인정돼 중죄에 해당하고 외국 여행이 잦은 분이라 도주 우려가 있고 피해자를 회유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도 있다”며 영장 신청 이유를 설명했다.

연극인들은 이윤택 연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는 “이윤택이 최근 수유리의 집을 처분하고 측근에게는 조사 후 공소시효 전 일이 대부분이라 감옥에는 안 가겠다고 말했다는 소식에 피해자들은 또 한 번 절망했다”며 “피해자들이 다시는 움츠러들지 않도록, 더 많은 피해자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구속은 당연하고 시급했던 조치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피해자는 “경찰 조사에서 많은 부분을 인정했다고 했지만 오랜 시간 그를 지켜봐 온 사람들은 그의 표정에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며 “그의 구속은 미처 용기 내지 못한 피해자들에게 위로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임인자 연극기획자는 “권력을 남용한 상습적 강제 성폭력 행위, 인간에 대한 존엄을 파괴하고 훼손했다”며 “구속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의 배우 홍예원은 “한국의 현대연극사는 이윤택 연출이 인권을 유린해 세워온 연극이 아니라 용기를 내 그를 고발한 연극인들에 의해 진정한 역사를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인들은 이번 구속영장 신청이 실제적인 법적 처벌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재현 극단 희망새 대표는 “처벌의 문제가 공소시효의 적용 때문이라면 새로 법을 바꿔서라도 처벌하는 게 맞다”며 “사회에 반인권적 행위를 알리는 제대로 된 경고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지금의 ‘미투’ 운동은 사회 부조리를 관습적으로 받아들인 부조리를 깨고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며 “그 과정에서 법의 공정성이 엄격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계와 권력으로 묵인됐던 공연예술계 성폭력 관행을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배소현 극작가 겸 배우는 “관습과 위계에 폭력이 은폐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며 “가해자가 법적 처벌을 받는 당연하고도 어려운 과정을 통해 더 이상 어떤 위계 폭력과 성폭력도 자행될 수 없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공연 관계자는 “위계와 권력에 의해 방치되고 묵인됐던 공연예술계의 성폭력 관행도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이윤택 연출이 1999년부터 2016년 6월까지 여성 연극인 17명을 62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조사를 진행해왔다. 16명의 연극인이 이윤택 연출을 고소했고 최근 1명이 추가로 고소장을 냈다. 경찰은 추가 고소 내용도 살펴보는 중이다.

이윤택 연출의 가해 행위 가운데 상당수는 2013년 성범죄 친고죄 폐지 이전에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은 2010년 신설된 상습죄 조항을 적용하면 2013년 이전 범행도 처벌이 가능한 점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이윤택 연출이 구속되면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경남 김해지역 극단 대표 조증윤에 이어 ‘미투’ 운동으로 구속된 두 번째 사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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