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성문재 기자] 부잣집 도련님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큰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다. 매번 용돈도 부족함 없이 넉넉히 받았다. 친구들이 보기에 도련님은 학교 열심히 다니고 사고만 치지 않으면 고민할 것이 없는 인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도련님의 부모님이 쓰러지셨다. 가세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어느 덧 용돈은커녕 병원비와 약값으로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하는 지경에 처했다. 도련님은 뒤늦게 후회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항상 건강하시리라 생각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국제 유가가 반년여만에 반토막이 나면서 정유업계는 곡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정유 4사의 정유부문 영업손실은 2조원을 웃돈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최대 정유업체인 SK이노베이션이 영업손실을 기록한다면 지난 1977년 이후 37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업계에선 ‘이러다 누구 하나 쓰러져야 나머지가 사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돈다.
원유를 해외에서 사들여와 정제해서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으로 만들어 파는 일이 본업인 정유사들로서는 국제 유가의 흐름을 예의주시해왔다.
그러나 정작 이번 국제 유가 급락기에 정유사들이 보여준 대처방안은 아무 것도 없었다. 어렵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총 150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업계 대표선수들이라고 하기에는 미숙해 보였다. 이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유가 하락은 충분히 예상가능한 시나리오 중 하나다.
정유사들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정유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 유가 변동에 좌우되기 쉽고,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라는 점에서 투자 자체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말한다. 게다가 이번 사태가 단지 국제 유가 하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석유제품 수요 둔화와 제품가격 하락이 수반된 문제라는 점도 당장의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이유라고 호소한다.
각 업체들은 뒤늦게나마 설비 효율을 높이거나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을 모색하며 경기 변동에 강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위기는 생존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정유업계가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나간다면 앞으로 펼쳐질 유가 상승기에는 이전보다 더욱 탁월한 성과를 올릴 수 있다. 정유업계가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진면목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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