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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ily 리포트)최회장, 잘못 이동하셨습니다

박호식 기자I 2004.02.26 19:06:09
[edaily 박호식기자] SK텔레콤이 표문수 사장의 사퇴문제로 시끄럽습니다. 표 사장이 내외에서 상당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회사를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이동전화 번호이동성 등 영업환경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직원들이 매우 당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이 표 사장 개인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추적이 필요하다는 게 산업부 박호식 기자의 생각입니다. SK그룹의 지배구조 개선 문제로 다시 돌아가고자 합니다. 일단 최근 진통을 겪고 있는 `SK텔레콤 대주주일가 퇴진`과 관련해 이사회 상황부터 들어보시죠. 이사회에 참석했던 사외이사와 SK텔레콤 임직원을 통해 흘러나온 얘기들을 요약해 재구성했습니다. 23일 오전 9시 SKT 이사회. 내달 12일 정기주총 안건 심의, 확정을 위해 소집됐다. 주요안건은 이사선임 건. 참여연대가 주주제안한 최태원, 손길승 회장 사퇴권고안의 주총상정 여부가 핵심이었다. 이사들은 22일에도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회동했다. 사내이사: 법률검토 결과 권고안 주주제안은 임기만료전 이사의 해임을 주주제안으로 주총에 상정하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이다. 사외이사 1: 주총상정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사외이사 2: 주주들의 요구이기 때문에 주총에 상정해야 한다. 사내이사: 대체적인 의견은 주총안건으로 상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으로 모아졌다. 다만, 최태원 회장과 손길승 회장이 사퇴할 것인가는 본인들의 의견을 묻고 설득해보겠다. 이사회를 하루 연기하자. 사외이사: 연기는 가능하지만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위해 최소한 이틀은 연기해야 한다.(SKT, 논의끝에 24일 오후 5시 이사회를 속개하기로 하고 산회) 24일 이사회. 이날 오후부터 최태원 회장과 손길승 회장뿐 아니라 표문수 사장과 최재원 부사장 일괄 사퇴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표문수 사장도 핵심 임원들에게 사퇴의사를 표명할 것을 밝혀 소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사내이사 : 최태원·손길승 회장과 표문수 사장이 이사 사퇴의사를 표명해 새로운 사내이사 후보로 서영길 부사장과 황규호 상무, 하성민 상무를 추천한다. 사외이사 1: 무슨 소리냐. 표문수 사장은 CEO로서 능력이나 여러면에서 사퇴해야 할 이유가 없다. 말도 안된다. 우리는 표문수 사장이 사퇴한다는 것 모르고 있었다.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야 하니 시간을 갖고 검토해야 한다. 사내이사 : 그러면 최태원 회장이 오셔서 설명을 해달라고 하겠다. 최태원 회장 : 그룹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패밀리들이 모두 퇴진하기로 했다. 이미 정해진 것이니 다른 오해는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달라(이사회 장에서 퇴장) 사외이사 : 이건 받아들일 수 없다. 표 사장 어디있나. 표 사장 얘기도 들어봐야겠다. 표문수 사장 : 10년간 SK텔레콤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회사를 위해 물러나야겠다.(곧바로 퇴장) 사외이사 : 받아들일 수 없다. 일단 본인은 나가 있어달라. (이후 사내-사외이사간 설전 후 하성민 이사를 제외한 2명의 후보추천 부결처리하고 폐회. 최회장 등 3명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키로 했다) 이틀간의 상황은 대충 이랬습니다. 이사회에 들어간 사람은 더 많이 알겠고, 안들어간 사람은 이 정도 밖에 모를 겝니다. 최태원 회장 등이 SK텔레콤 이사직을 사임키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SK텔레콤이나 SK(주)에 긍정적이라며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습니다. SK그룹이 `계열사에서 대주주일가 이사직 사퇴`나 `사외이사 비중확대` 등 각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책을 내놓고 있었던 만큼 지배구조 개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에도 불구, SK텔레콤 사태를 보면 찜찜함이 더 큽니다. 지배구조는 지분구조, 이사회 구성 등 형식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이사회가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운영됨으로써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합니다.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 사외이사는 표문수 사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얘기가 핵심층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고 전합니다. 표 사장이 줄곧 SK텔레콤이 그룹에서 독립된 경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고, 특히 SK네트웍스나 해운 문제가 터졌을때 손길승 회장의 지원요구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상거래 이상의 지원을 거부한 게 사임의 주요인이라는 설명입니다. 이 때문에 손 회장이 걸림돌 제거 차원, 이후를 대비해 표 사장 퇴임을 주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간간히 들어왔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번 이사회 이전 손 회장이 퇴임을 조건으로 표 사장 동반사퇴를 요구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사외이사들이나 직원들은 "표 사장이 CEO로서 失機한 점이 발견되지 않고 회사가 번호이동성 등 어려운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사퇴한데 대해 이같은 배경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표 사장이 최태원 회장의 고종사촌이라지만, 표 사장이 그룹지원과 관련해 견지해온 자세나 외부에서 그와 관련한 어떤 문제제기도 없었다는 점에서 `대주주일가 동반퇴진`에 끼워넣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입니다. 이사회에서도 이에 대해 어떤 반박논리도 제시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외이사나 참여연대, 직원들은 부실계열사 지원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CEO가 대주주로부터 사퇴압력을 받은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또 새로운 CEO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은 채 대주주측이 일방적으로 CEO 교체를 통보한 것은 또다른 대주주의 전횡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 사외이사는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새로운 CEO가 대주주의 외풍을 막아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는 "지금 차기 CEO로 거론되고 있는 인사들중 다른 계열사 사장은 손길승 회장의 오른팔과 같은 사람이고, 또다른 유력 사내이사는 경영능력과는 상관없이, 성격도 온순하고 대주주의 잘못된 요구를 거부할 여건이 안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세상에는 표 사장보다 유능한 CEO후보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닙니다. 10조원의 매출에 3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회사가 하루아침에 대표이사 CEO를 `대주주 친척이니까`라는 이유로 물러나게 하는 상황은 초일류 기업 SKT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적어도 액면분할을 해서 22만원대 주가를 유지하는 한국의 대표기업 SKT한테 `그룹지원을 거절한 사장을 자르는 상황은` 정말 안 어울린단 말입니다. 지금 무조건 대주주의 핏줄이면 경영해선 안된다는 논리를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거부하던 억지논리를 말이죠. 그런 논리라면 SK(주)에서 최 회장은 이사직을 왜 안 물러납니까. 독립적 경영을 하려는 고종사촌은 물러나더라도, 본인은 지켜야한다? 정말 잘못 이동된게 아닙니까. 한 통신담당 애널리스트가 "SK(주) 지배구조 개선을 놓고 대주주측과 표대결을 앞둔 외국계들이 이번 표 사장 사퇴과정을 SK(주) 지배구조 개선에 연결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하 까닭도 바로 이때문입니다. SK텔레콤 이사회 이후 SK텔레콤 직원들은 번호이동성, 위성DMB, 휴대인터넷 등 중요한 일들을 앞에 놓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안은 표 사장 개인이 CEO를 계속해야 하는지라는 SKT 자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은 최 회장이나 SK그룹이 지배구조개선을 실질적으로 이루려고 하는지를 평가하는 잣대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눈빛은 차갑고, 손바닥은 하늘을 가리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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