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끝까지 버틸 것이냐, 제발로 걸어서 나갈 것이냐, 아니면 끌려나갈 것이냐’. 선택지는 셋 중 하나다. 23일째 조계사에 은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는 지난 5일 2차 민중총궐기 집회가 평화적으로 끝난 뒤 한 위원장에게 약속한 대로 6일에 퇴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이 중단되기 전에는 조계사에서 퇴거할 수 없다며 ‘버티기’에 들어간 상태다.
지난 30일에 이어 8일에도 조계사 일부 신도들이 한 위원장을 사찰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한 위원장이 은신해 있는 관음전에 진입했으나 입구가 잠겨 있어 결국 포기하고 철수했다.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도 이날 조계사를 찾아 한 위원장의 자진퇴거를 요구했다. 구 청장은 “자진퇴거하지 않으면 법적 절차에 따라 영장을 집행할 수 밖에 없다”고 압박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한발 더 나아가 ‘24시간 최후통첩’을 보냈다. 강 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한 위원장이 9일 오후 4시까지 조계사에서 자진 퇴거하지 않을 경우 조계사에 강제 진입해 한 위원장을 검거하겠다는 강수를 꺼내들었다.
그동안 한 위원장을 보호해온 화쟁위원회도 한발 물러섰다. 화쟁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야당이 연내 노동관련법을 처리하지 않겠다는 당론을 밝힌 만큼 이를 믿고 거취를 조속히 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조계사측은 최 위원장에게 9일 오후 5시까지만 중재를 맡겠다며 그때까지 퇴거여부를 결정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조계사와 화쟁위가 한 위원장의 퇴거를 강하게 요구하고 나선 것은 신도들의 반발과 경찰측의 압박에 따른 부담 때문으로 보인다.
조계사 신도회 측은 내일 오후 5시가 넘어가면 공권력을 동원해 한 위원장을 끌어내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경찰 또한 신도회측의 요청이 있으면 병력을 투입해 한 위원장의 신병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한 위원장은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을 여러 차례 겪었다. 한 위원장은 금속노조 출신 해고노동자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을 맡아 2009년에 쌍용차 구조조정에 따른 정리해고에 맞서 77일간의 옥쇄파업을 이끈 뒤 해고됐다. 3년간의 옥살이 후 출소한 뒤에는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171일간 송전탑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작년 12월 민주노총 선거에 뛰어들어 ‘즉각적인 총파업’을 공약으로 내걸고 민주노총내 강성세력을 결집해 위원장에 당선됐다. 올해 4월 1차 총파업을 이끈 뒤 불법 시위 혐의로 수배되자 5월부터 6개월간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생활해 왔다.
한 위원장이 조계사로 몸을 숨긴 것은 불교신자이기도 하지만 과거 쌍용차 해고 투쟁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던 자승 스님의 위로에 큰 감동을 받은 경험 때문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