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로존 성장세가 회복세를 타고 있고 두 차례 3년만기 장기대출 입찰로 신용경색도 풀리고 있는 반면 물가가 꿈틀대자 ECB도 전통적인 `인플레 파이터`로서의 역할에 무게를 두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유로존의 최근 경제 성장세가 미약하나마 살아나고 있는 반면 인플레이션이 다시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 ECB의 정책노선 변화를 이끈 가장 큰 이유다.
이날 ECB 집행부는 올해 유로존의 국내 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0.4~1.0%에서 -0.5~0.3%로 하향 조정했지만, 그 폭은 크지 않았고 오히려 "최근 3개월간 지표는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지난달까지 썼던 `일시적인 회복`이라는 표현을 없애 현 경기 진단이 오히려 소폭 상향됐음을 보여줬다.
마리오 드라기(아래 사진) 총재도 기자회견에서 "경기 전망에는 하방 리스크가 상존하지만, 유로존 경제에 안정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며 "올해 경기 회복이 아주, 아주 더디게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물가 우려는 훨씬 더 커졌다. 그는 "인플레이션은 상방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며 "올해 인플레이션은 우리의 정책목표인 2% 위에서 주로 머물 것으로 보이며 상방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에 따라 "물가 안정을 유지한다는 정책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이날 ECB는 올해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2.1~2.7%로, 정책목표인 2%보다 높게 수정 제시했다. 앞서 작년 12월에는 1.5~2.5%로 예상했었다. 또 내년 전망치도 당초 0.8~2.2%로 전망했는데, 이번에는 0.9~2.3%로 상향 조정했다.
특히 이날 드라기 총재의 발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모든 비전통적인 부양조치들은 일시적인 것"이라며 "이제는 정상적이고, 전통적인 중앙은행 정책으로 돌아갈 때"라고 밝힌 부분이다. 위기 상황이 진정되고 있는 만큼 추가 부양책보다는 중앙은행 본연의 물가 안정에 신경쓰겠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기 때문이다.
드라기 총재는 이날 "우리는 이미 장기대출을 이미 두 차례 실시했고, 그 정책 효과와 그에 따른 금융환경 변화를 지켜보고자 한다"며 "이제 공은 정부와 은행권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또 "리스크 환경은 개선되고 있고, 시장은 3년만기 장기대출 이후에 다시 열리고 있다"며 "선순위 보증채 시장은 물론이고 커버드본드와 심지어 은행간 단기자금시장도 제한적으로 회복되고 있다"며 추가 부양이 없을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에 따라 향후 ECB가 인플레 매파로 돌아서며 상황에 따라서는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경기 후퇴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서둘러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현재 ECB의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인 1%다.
소시에떼 제널럴의 제임스 닉슨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드라기 총재의 발언은 분명히 매파적이었다"며 "기본적으로 ECB는 위기상황이 개선될 것임을 낙관하고 있고, 이에 따라 앞으로는 인플레이션에 정책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점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