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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번 국민은행 파업은 노사 모두에 ‘상처만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봉 1억원’ 귀족 노조의 파업이라는 게 싸늘한 여론의 시선이었다. 디지털 시대, 은행의 치부가 들춰졌다는 점에서 사측의 고민도 커졌다.
◇국민銀 노사 합의했지만…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 노사는 지난 23일 오후 2시 중노위 제1조정회의실에서 사후조정을 진행한 끝에 도출된 조정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지난 8일 총파업 이후 입장 차를 좁혀오다가 전격 합의에 이른 것이다. 노조는 오는 25일 조합원 찬반 투표를 거친 뒤 정식으로 서명할 계획이다.
합의안에 따르면 노사는 L0 직군(창구전담 직원) 처우 문제, 페이밴드(호봉상한제) 문제 등과 관련해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인사제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5년간 운영하기로 했다. 노사는 그동안 △L0 직군이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근무경력 인정 기간 △2014년 이후 입사한 신입직원에게만 적용된 페이밴드의 확대 혹은 폐지 등을 두고 대립각을 세웠다. 만약 TF가 끝날 때까지 결론을 내지 못하면 페이밴드의 상한을 직급별로 현행 대비 5년 완화하기로 했다.
임금피크 진입 시기는 부점장급과 팀원·팀장급 모두 만 56세가 되는 날의 다음달 1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현재 국민은행은 부점장급은 만 55세 생일 다음달부터, 팀원·팀장급은 만 55세가 된 다음해부터 임금피크를 각각 적용하고 있다. 대신 팀장급 이하 직원에게는 재택 연수를 6개월 제공할 예정이다.
성과급의 경우 사실상 300% 수준에서 합의됐다. 통상임금의 150%는 현금으로, 100%는 우리사주로, 50%는 미지급 시간외수당으로 총 300%를 채운다는데 노사가 접점을 찾았다.
이밖에 노사는 일부 전문직무직원의 무기계약직화, 후선 보임 점포장 비율 축소, 휴게시간 1시간 보장, PC 오프제 실시 등에도 합의했다. 아울러 산별 합의에 따른 주 52시간 도입을 위해 근로시간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노조 관계자는 “국민과 고객의 피해만은 막아야 했기에 결단을 내렸다”고 했다.
◇‘은행의 미래란’ 무거운 화두
19년 만의 총파업은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가장 첫 손에 꼽히는 게 디지털 시대의 은행 역할론이다. 점포에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디지털 시대에 과연 은행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금융권 한 고위관계자는 “1000개 안팎에 달하는 각 시중은행의 영업점포는 몇 년 후 거점점포를 제외하고 다 사라질 수 있다”며 “이건 그렇게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은행의 미래에 대해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현재 국민은행의 국내 영업점포는 1050개다. 국민은행뿐만 아니다. 농협은행은 이보다 많은 1151개다. 우리은행(878개), 신한은행(870개), 하나은행(759개) 등도 1000개에 가깝다. 이 중 대면 상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거점점포를 제외하면, 상당 부분 없어질 수 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영업점포가 없는 카카오은행과 케이뱅크가 은행의 미래를 추상적이나마 보여준다는 분석도 있다. 카카오뱅크는 출범 1년6개월 만에 고객 수 800만명을 돌파했다.
◇파업 속 내부 분열 도드라져
파업까지 간 마당에 직원들 각자의 속내가 달랐다는 점도 주목할 포인트다. L0 직군의 처우 개선 문제가 대표적이다. L0는 2014년 영업점 입출금을 맡는 텔러 직군 41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만들어졌다. 당시 최대 60개월까지 근무 경력을 인정했지만, 그 범위를 확대해 달라는 게 노조의 요구였다. 하지만 은행 내 일각에서는 이게 굳이 필요하냐는 기류도 감지됐다. 업무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하지 않냐는 게 그 논리다. 그 옳고 그름을 떠나 내부 결속보다는 분열 양상이 도드라진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세대 갈등의 조짐도 감지된다. 페이밴드가 그 상징이다. 페이밴드는 일정기간 승진하지 못하면 임금이 동결되는 제도다. 문제는 현재 국민은행 내 2014년 이후 입사한 젊은 직원들에게만 페이밴드가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권 한 인사는 “이번 합의에서 쟁점이 됐던 임금 체계에 대해 TF를 만들기로 한 것은 결국 뾰족한 수가 없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노조가 1차 파업 이후 내부 동력을 점차 잃은 것도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또다른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2차 파업까지 가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사측과 노조 중 ‘누가 이겼다’는 판단을 할 수 없게 됐다”며 “모두에게 상처만 남겼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