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출품작 ‘일렉트리컬 스킨’은 건축 패러다임의 변화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니, 제대로 말하자면 건축의 ‘혁신’에 가깝다. “철근 등으로 만들어진 틀에 시멘트를 붓는 기존의 건축 시스템을 바꾸자는 취집니다. 3D프린터로 건축과 배선, 난방관 등을 한 번에 구현해 내는 게 ‘일렉트리컬 스킨’의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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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분야다. 3D프린터야 널리 알려진 지 오래지만, 건축에 이를 결합하려는 시도는 아직 없었다. 그러나 스위스 등 유럽에서는 ‘언젠가는 이뤄질 수밖에 없는 분야’라는 확신 아래 관련 연구에 막대한 투자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중심에 한국인 건축가 권현철이 있다.
권현철이 처음부터 3D프린터를 이용한 건축에 관심을 뒀던 건 아니다. 3년전 단순 건축학 공부를 위해 영국 런던행 티켓을 끊은 권현철은 런던대 바틀렛 건축대학에서 관련 내용을 처음 접했다. 런던대 석사 연구 대표작인 ‘3D 캔틸레버 의자(Cantilever Chair)’로 권현철은 그해 최고 작품에 주어지는 골드트랙 어워드(Gold Track Award)를 수상했다. 때마침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도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그는 압도적인 스위스 정부의 행정 ·재정적 지원에 깜짝 놀랐고, 지금도 ‘감사하다’고 말한다.
“돌이켜 보니 스위스가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수도 있겠군요. 연구환경이 너무나 좋습니다. 지원이 어마 무지하게 들어오더군요. 하고 싶은 연구를 맘껏 하지만 돈에 대해선 일절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는 기회가 닿으면 다시 런던으로 향하길 꿈꾼다. “박사과정을 마무리하면 런던에서 실용성에 더해 ‘창의성’ ‘아름다움’ ‘예술’ 등 디자인 면에서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그의 바람은 이번 출품작 ‘일렉트리컬 스킨’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사실 하나의 건축 입면에 불과하지만, ‘조명이 통합된 자유 곡면’ 이미지를 통해 ‘예술’이라는 옷을 덧붙였다. 그의 내면에 깃든 ‘예술성’을 발현하기 위한 몸부림일 수 있다고 조심스레 추측해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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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건축학계도 조금은 더 ‘진보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봤다. ‘당분간 한국에 돌아올 계획이 없다’는 그의 단언과 맥이 닿는 부분이다. “지속적으로 관련 연구를 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처음에는 흥미였지만 지금은 너무나 재밌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러 여건상 이 연구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 정부의 4차 산업혁명 대응이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컴퓨팅, 사이버 물리 시스템(CPS) 등에만 치우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건축도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주요 분야 중 하나죠. 3D프린팅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으면 합니다.”
인터뷰 내내 그의 3D프린터는 로봇팔을 이용해 또 다른 ‘일렉트리컬 스킨’을 만드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이 작품이 전시된 곳은 종로의 ‘세운상가 세운베이스먼트’다. 첨단을 이야기하는 권철현의 작품이 왜 시장 한복판, 그것도 지하에 있는지 의아했다. “기존 건축가의 장인정신과 (3D프린터라는) 하이테크놀러지가 뭉치면 재밌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새 제조업의 방향을 제시하지 않을까요.” 새로운 건축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일종의 ‘권현철 독트린’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