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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국악계에서도 성폭력 문제가 불거졌다. 거문고 명인으로 수도권 소재 한 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는 A씨가 무형문화재 전수조교로 가르친 제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13일 MBC는 A씨가 이 대학에서 제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는 이 대학 졸업생과 재학생 등 모두 7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올린 ‘미투’(MeToo) 글로 A씨의 성추행을 폭로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A씨는 연주법과 복식호흡법을 알려준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학은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에 착수했으며 명예교수직 박탈 여부도 논의할 계획이다. 이데일리는 해당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A씨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국악계는 문화예술 분야 중에서도 폐쇄적인 면이 많아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13일 밤 방송된 MBC ‘PD수첩’에서는 2015년 충남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B씨의 성희롱을 고발한 단원들의 뒷이야기가 나왔다. 피해자들은 폐쇄적인 국악계로 여전히 피해를 입고 있었다.
방송에 따르면 B씨는 지난해 10월 대전지법으로부터 실형을 받았다. 그러나 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단원들의 앞길은 어두워졌다. 한 단원은 방송을 통해 “국악계에 같이 오래 있었던 분들이 ‘네가 그분을 감옥에 보낸 1등 공신인데 어떻게 여기서 앞으로 나아가겠느냐’라고 했다”고 말했다.
국악계도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과 함께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음악인 남궁연이 전통음악 전공자를 포함한 5명의 여성으로부터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남궁연은 14일 현재까지 사과나 입장 표명이 없는 상태다. 페이스북 등 SNS에는 민속단체 등 국악계의 성폭력 문제를 폭로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국악계도 성폭력 문제의 원인과 이를 가능케 한 구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춘오 국악지 라라 편집장은 “최근 드러나고 있는 사건들은 국악계라서 특별히 불거진 일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있는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 편집장은 국악지 라라를 통해 2016년부터 국악계 성폭력 문제의 공론화를 위해 실태조사 등을 진행해왔다. 유 편집장은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파렴치한 일이 많은데다 그 범위도 광범위했다”며 “가해자들의 죄의식 자체가 의심이 될 정도로 사례가 빈번했다”고 말했다.
또한 “실태조사를 통해 접수받은 사례 중에는 동기 간에 벌어진 일도 있고 선후배 사이에서 벌어진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사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면서 “이런 일이 특히 사제간에서 많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원인과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