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는 전체 직원에 적용되던 취업규칙을 가지고 있다가, 주 5일제를 도입한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일(2004년 7월 1일)에 맞추어 과장급 이상의 간부사원에게 적용되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별도로 제정·시행했다.
간부사원은 일반직 과장 이상, 연구직 선임 연구원 이상, 생산직 기장 이상의 직위자를 말한다. 별도로 제정된 간부사원 취업규칙은 구체적으로 기존 취업규칙상의 월차휴가를 폐지하고 연차휴가일수에 상한선을 규정하는 등 연월차휴가 관련 내용을 변경했다.
현대차는 2004년 8월 16일 지역본부별, 부서별 간부사원들을 모아 전체 간부사원 6683명 가운데 89%에 해당하는 5958명의 동의서를 징구했고, 같은 달 18일 서울강남지방노동사무소장에게 이 사건 취업규칙의 변경을 신고했다.
다만 과반수 노동조합인 현대차노조의 동의는 받지는 않았다. 이에 일부 간부사원들은 간부사원 취업규칙상 연월차휴가 관련 규정이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은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으로서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미지급 연월차휴가수당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취업규칙을 임의로 적용해 월차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연차휴가는 25일로 제한함으로써 간부사원들에게 불이익한 차별적 근로조건을 적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근로기준법에 의해 전체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1심은 “원고들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종전 취업규칙에 따른 미지급 연월차휴가수당을 직접 청구할 수 있으므로 부당이득이 성립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다만 2심은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휴가 관련 부분은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에 해당하는데,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았고 사회통념상 합리성도 인정되지 않으므로 무효”라며 원고들의 미지급 연월차휴가수당 지급청구를 일부 인용했다.
|
대법원은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면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했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유효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종래 대법원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하면서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가 요구하는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해당 취업규칙의 작성,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유효하다고 판단해 왔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종전 판례가 들고 있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확정적이지 않고,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지 당사자가 쉽게 알기 어렵다”며 “이로 인해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계속돼 법적 불안정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근로조건의 유연한 조정은 사용자에 의한 일방적 취업규칙 변경을 승인함으로써가 근로자의 동의를 구하는 사용자의 설득과 노력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못했다고 해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이 항상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며 근로자 측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에는 동의가 없는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도 유효하다고 인정될 수 있다고 대법원은 판시했다.
이에 대법원은 “원심은 종전 판례의 태도인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적용해 간부사원 취업규칙 가운데 연월차휴가 관련 부분의 효력을 판단했을 뿐, 노동조합의 부동의가 집단적 동의권 남용에 해당하는지에 관해 전혀 판단하지 않았으므로 법리오해·심리미진의 위법이 있다”면서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한편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근로기준법에 강행규정으로 정한 집단적 동의를 사회통념상 합리성으로 대체할 수 없음을 명시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의 유효요건을 법문대로 정립한 판시라고 전했다.
또 근로자 측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불이익한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인정할 가능성을 열어 둠으로써 구체적 타당성을 기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