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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 사관학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임금체불 사태 왜 생겼나

김현아 기자I 2017.01.20 14:43:23

박근혜 정부 미래 수석 두명 배출한 전문 정책기관
연구적립금 652억 있지만..운용수익률 낮아 임금체불
직원들에게는 끝까지 쉬쉬
시대적 소명 다했다 지적도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사관 학교로 불리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원장 김도환, KISDI)이 지난해 12월 급여를 주지 못했다.

지난해 25억 원의 적자를 봤기 때문이다. KISDI 박사들과 연구원 등 정규직 138명을 포함한 160여명의 직원들은 불안한 연말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KISDI는 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이지만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등 ICT와 미디어 유관 부처의 연구용역 과제를 수행하면서 정책 근거를 제시해 왔다.

통신시장 및 방송시장 경쟁상황평가 같은 정례적 용역은 물론,정부의 각종 인·허가 때에도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거나 조언을 해 왔다.

박근혜 정부 들어 윤창번(김앤장 고문)·조신(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등 미래전략 수석을 배출하는 등 KISDI 출신들은 정부와 업계로 활발히 진출한 상태다.

하지만 KISDI는 지난해 임금체불 사태로 KISDI 노동조합이 김도환 원장을 고용노동청에 고발하는 등 우울한 연말 연시를 보내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충북혁신도시로 이전한 KISDI 신사옥 조감도
◇연구적립금 652억 있지만…운용수익률 낮아 임금체불

김사혁 KISDI 노조 위원장은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652억 상당의 ‘정보통신연구적립금’이 있지만 맘대로 빼서 쓸 수 없는 구조이며, 이 적립금의 운용수익률이 지난해 1%대에 머물러 12월 임금이 체납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적자분은 지난해 털게 돼 있어 1월 급여는 정상 지급될 것으로 보이지만 연구적립금을 굴려 4.5%의 수익을 거두는 걸 전제로 예산이 편성돼 불안함은 여전하다”면서 “때문에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넣었고, 사용자에 대해 형사적 처벌을 원한다고 했다”고 부연했다.

KISDI는 겉으로 보면 부자 연구원이다. 한국전기통신공사(KT)와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이 KISDI에 출연한 470억 원을 종잣돈으로 해서 수익이 날 때마다 연구적립금을 늘려 왔고 이게 652억 원이나 있다.

또 충북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240억 원의 이전자금도 생겼다.

하지만 기업들이 낸 연구적립금은 맘대로 빼 쓰지 못하는데다 이전자금 역시 국고로 귀속됐다.

여기에 지난해 적립금 운용수익률이 1%대에 머물면서 25억 원 정도의 적자가 발생했고, 결국 직원들을 상대로 임금체불이 이뤄진 것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정부가 652억 원을 가져가고 다른 연구원들처럼 출연금을 늘려주기를 바란다”면서 “적립금 운용 수익을 늘리기 위해 (정보통신 정책연구를 해야 하는) 연구원들이 기금관리위원회를 만들어 펀드에 투자하는데 집중하는 현실이 말이 되느냐. 사실상 투기아니냐”고 되물었다.

실제로 KISDI 기금관리위원회는 안전자산인 예금이 아닌 수익률이 높은 펀드 등에 투자하면서 한 때 6% 대의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는 했지만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 등으로 펀드 수익률이 떨어지자 이런 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김 위원장은 “경영진이 기재부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652억 원을 반납하겠으니 정부 출연을 늘려 달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이 때문에 줄어든 정부 과제 속에서 박사들은 민간 과제를 따기 위해 내몰리고 있다. 과제를 10개 하는 박사들도 있다. 이래서야 제대로 된 연구가 가능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감사원은 2015년 KISDI가 이사회 승인 없이 연구적립금을 별도 예산으로 편성해 써왔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기재부는 2016년 정부 출연 예산을 중단하고 KISDI가 연구적립금을 굴려 4.5%의 수익을 거두는 걸 전제로 예산을 편성하게 했다.

◇임금체불 직원들에 쉬쉬…신사옥 예산 낭비와 ‘시대적 소명 다했다 ’지적도

KISDI 노조에 따르면 경영진은 직원들에게 12월 임금 체불 사실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고, 노조위원장 역시 이틀 전에 감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올해 3월 임기가 끝나는 김도환 원장에 대한 원망이 커지고 있다. 김 원장은 현재 정부 3.0 위원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구적립금에 대한 과도한 수익률 요구에 대한 부당함과 별개로, 김 원장이 합리적인 경영 마인드로 조직을 경영하지 못했다는 내부 비판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KISDI 박사는 “기금이라는게 넣을 수는 있는데 맘대로 빼서 쓰기는 어려운 점이 근본 원인”이라면서도 “신사옥 예산 낭비와 인력 운영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충북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지나치게 건물을 크게 지어서 방이 남아 돈다는 것이다.

그는 “쓸데 없이 크게 지었고 친환경성을 강조했는데 3분의 1정도만 쓰고 나머지는 임대할 수 있다”며 “지방이전과 함께 박사 인력이 오지 않을 걸 우려해(임금이 비싼) 박사들 위주로 인력 채용을 해서 비용을 높인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 주도 ICT 정책의 중요성이 줄어들면서 KISDI가 시대적 소명을 다한 게 아니냐는 평가도 조심스레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이제 ICT 분야의 혁신은 정부 정책이 아니라 기업의 자발성에서 나오고 융합의 화두 역시 IT가 아니라 해당 산업 분야, 전문 분야에서 나와야 한다”며 “KISDI는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정부 역시 IT 중심의 정보화 개념을 없애고 정부 혁신으로 가야 한다”며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전자정부 지원 기능 역시 클라우드 기반 통합전산센터로 통합하고, 정부조직의 인사 등은 행자부가 하면서 지방자치를 꽃피울 수 있는 구조로 개편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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