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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8일 발인 후 고성군 선영에 묻혔다.
경남 고성에서 지난 1924년 출생한 이 전 사령관은 1949년 육사(8기)를 졸업하고 국방부 기획국장, 육군 제1군단장, 육군 참모차장, 중앙정보부 부장서리를 지냈다.
그는 지난 1979년 육군참모차장 당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등과 함께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키고 이어 5·18 학살을 주도한 핵심 5인으로 꼽힌다. 5·18 이후에도 교통부 장관과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등으로 영화를 누리다 지난 1997년 김영삼 정부 당시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 전 사령관은 5·18 재판에서 책임을 부정하고 전두환에 책임을 돌린 바 있다.
이 전 사령관의 사망으로 신군부 핵심 5인(전두환, 노태우, 이희성, 황영시, 정호용) 중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만 생존해있다.
이에 대해 5·18조사위는 “이 전 사령관의 사망을 애석하게 여기며,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어 “고인이 지난 42년간 피해자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고 사죄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조사에서 ‘모두 다 내가 한 것은 아니다’라는 언급만 남긴 채 사망하여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5·18조사위는 “향후 5·18 진상규명 관련 중요 인물 및 관련자 51명에 대해 법률이 부여한 권한과 책임에 따라 지속적이고 엄정하게 조사해 나갈 것”이라며 중요인물과 관련자들이 국민 통합과 화해를 위해 역사 앞에 진실을 고백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5·18 관련 단체들은 이 전 사령관이 결국 사죄 없이 숨졌다며 유감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