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는 18일 고려해운·HMM(011200)·SM상선 등 국내외 23개 선사가 2003~2018년까지 약 15년간 한~동남아 수출·수입 항로에서 불법 담합행위를 했다고 보고 총 962억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결정했다.
◇해수부 “유감…부처 시각 차 여전”
해수부 관계자는 이날 공정위 제재 결정에 대해 “유감이다”라는 짧은 입장을 밝혔다. 해운운임 담합을 두고 지난해 하반기 내내 날 선 신경전을 벌여왔던 해수부가 이처럼 말을 아끼는 것은 부처 갈등으로 비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날 해수부는 공정위 제재에 대한 입장문이나 백브리핑, 반박 자료 등 일절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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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공정위 심사관이 선사들에 최대 8000억원(전체 매출액의 10% 적용 시)의 과징금 부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각 사에 발송한 것에 비해 과징금은 10분의 1 수준으로 결정됐다. 조홍선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이에 대해 “해운업 공동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했다”며 “또 수입 항로는 이번 담합 행위가 미치는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과징금 부과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해수부의 노력이 일정 부문 결실을 맺은 셈이다.
국회에 상정된 해운법 개정안도 해수부에게는 든든한 지원자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지난해 9월 해운 공동행위와 관련해 공정위와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해수부에 감독권을 일원화하는 내용을 담은 해운법 개정안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국회 관계자는 “개정안 소위 통과는 공정위가 적극적인 태도로 해수부와 해운 담합을 논의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귀띔했다.
이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해운사 담합 행위를 공정위가 아닌 해수부가 전담하게 된다. 또 국회 심사 중인 법안에 소급 적용 조항이 들어가 있어 이날 공정위가 발표한 제재도 무마될 수 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해상운임 담합 제재 브리핑에서 “해운법 개정과 관련해서 해수부와 실무 차원에서 협의를 통해 잠정적으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 농해수위에 계류 중인 개정안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해운 특성 몰라 vs 해운법 절차 미준수”
두 부처 갈등은 2018년 한국목재합판유통협회가 공정위에 해상운임 담합을 신고하면서 발발했다. 공정위는 같은 해 12월 조사에 착수했고 지난해 5월 국내외 23개 해운사에 8000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적시한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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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는 지난해 7월 해운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이들 세부협의는 신고할 필요가 없었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으며 팽팽히 맞섰다. 또 선주들이 화주들과 최초 합의한 것보다 더 낮은 운임으로 운영했기 때문에 담합이 아니라며 해운사의 입장을 대변했다.
해운업계는 “해운업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한 무지의 결과”라며 공정위 제재 움직임에 반발했다. 이후 두 부처는 수 차례에 걸쳐 실무진 회동을 가지며 소통했고, 지난 12일 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는 해수부, 해운협회, 해운 전문가 등을 참고인으로 불러 입장을 듣기도 했다.
이 과정을 거쳐 공정위는 이날 “이번 운임 담합은 해운법상 신고와 협의 요건을 준수하지 않았다”며 “해운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가 아니다”라고 최종 결론냈다.
한국해운협회는 행정소송을 예고했다. 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해운기업들은 해수부 지도·감독과 해운법에 따라 지난 40여년간 절차를 준수하며 공동행위를 펼쳐왔는데도 절차상 흠결을 빌미로 해운기업들을 부당공 동행위자로 낙인찍었다”며 “공정위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고, 해운공동행위의 정당성 회복을 위해 행정소송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