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대표는 ‘도사’, ‘덕후’, ‘외골수’ 느낌이 어울렸다. 180cm 후반의 키에 마른 몸으로 행색은 남루했다. 그런데 바둑이야기가 나오자 눈이 번쩍였다. 그는 “이세돌 선수의 대국을 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며 “알파고가 활용한 딥러닝 기술에다가 다양한 알고리즘을 적용한 더 강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며 얘기를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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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됐다. 임 대표가 최근(지난 24일) 5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떠났고, 개인 SNS에 평소 바둑을 좋아했던 그의 게시글들과 고인이 개발한 프로그램만이 남았다.
고인은 국내 컴퓨터 바둑프로그램 개발의 1세대로 통한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고인은 소프트웨어회사의 네트워크 서버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1997년에 ‘바둑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2012년부터는 AI 바둑 프로그램 ‘돌바람’을 혼자서 개발했다. 돌바람은 ‘한국판 알파고’라고 불리며 한게임이 한돌을 내놓기 전까지 국내 최고 AI 바둑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일본의 딥젠고와 실력을 겨뤄 이겼고, 세계 AI바둑대회에서 9위를 차지하기도 했을 정도다.
놀라운 것은 모든 알고리즘 개발을 임 대표 홀로 했다는 점이다. 알파고가 몬테카를로 방식에 근거한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AI가 어디에 돌을 놓아야 할지 결정한다면 돌바람은 고인이 개발한 통계 추론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쉽게 말해 전통 지식(바둑 알고리즘)에 첨단 기술(딥러닝 기술)을 적용해 딥러닝과 첨단 장비를 동원한 일본의 프로그램을 꺾은 셈이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투자해 이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국’ 이후 고인과 돌바람도 잠시 주목을 받았지만 이어지지는 못했다. 일부 과학자들은 그가 생활고를 겪었으리라고 추정한다.
이제는 인간(바둑기사)이 AI를 이기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하지만, 과학기술과 바둑을 연결해 세상과 소통하려고 했던 그의 흔적들은 후속 프로그램들과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남았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한 AI 전문가는 “AI학회에서도 모시려고 했는데 본인이 준비가 덜 됐다며 고사했던 분”이라며 “별다른 외부 지원 없이 개인 장비(컴퓨터)와 개인 경험으로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일본의 프로그램을 꺾었던 인재인데 정부에서 더 밀어줬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든다”며 고인을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