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급자 공개가 사적 제재? 피해자들 움츠러들 수밖에”
대법원은 지난 4일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해온 구본창(61) ‘배드파더스’ 대표에게 벌금 100만원과 선고유예 판결을 확정했다. 1심은 구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고 대법원은 ‘배드파더스가 인격권과 명예를 훼손하는 사적 제재 수단의 일환에 가깝다’는 취지로 최종 유죄 판결을 내렸다.
구 대표는 10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해 묻자 “지금 ‘멘붕’에 가깝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 자체를 못 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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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대표는 “나를 비롯한 사이트 운영자들이 이번 판결로 근본적인 회의감을 가지게 됐고 앞으로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미지급자의 명예와 권리도 중요하고 법치 국가에서 사적 제재는 안 된다는 것엔 동의하지만, 미지급자의 신상 공개가 ‘사적’인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양육비 미지급률이 아직도 80%에 달하는 것만 봐도 법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미투사건이나 학교폭력 문제도 피해자들이 법적으로 해결할 수 없어 가해자가 누구인지 세상에 알린 것인데 이런 것이 사적 제재라면 피해자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피해자들, ‘소액 벌금’ 각오하고 싸움 택할지도”
대법원 판결 이후 사이트가 유지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지만 구 대표는 피해 양육자들의 요구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직 피해 양육자들은 법적 절차보다 사이트에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배드파더스 경우 약 2500건의 신상공개로 1000건의 사건을 해결했다. 양육 피해자들은 약 800명의 신상을 공개했는데 이중 300명이 양육비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구 대표는 “배드파더스 이후 복제 사이트가 나오기도 했는데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유사한 사이트가 생길 것”이라며 “판결 이후 향후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의논해오는 피해 양육자들도 있었다”고 언급했다.
구 대표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현실적인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례는 향후 양육비를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싸움’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법원이 양육비 미지급자의 명예도 보호해야 하지만 아이의 생존권을 보호해야 하는 현실을 고려해 선고유예를 내렸다는 이해다.
그는 “피해자들이 ‘소액의 벌금형’을 각오한다면 싸울 수 있는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대법원 판결로 ‘양육비’가 내 아이의 생존권이라고 생각하는 양육자와 개인 간 채권·채무 관계로 생각하는 양육자로 구분되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이어 “소액의 벌금형을 물어도 싸우겠다고 하면 싸우는 것이고 양육자가 벌금형을 무는 가능성까지 감수하면서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구 대표는 근본적으로 법적 해결이 먼저인데 사이트를 운영하는 동안 법적 조치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법적으로 양육비를 받아낼 수 있었으면, 이런 사이트가 다시 생기지도 않았을 거라는 설명이다. 현재 국회에 양육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이 9건 발의돼 계류 중이다.
구 대표는 “이전 정부도, 현 정부도 선거공약 때 양육비 선지급제나, 얼굴 등 신상공개를 내놨지만 지키지 않았다”며 “발의된 9건만 통과돼도 양육비 문제는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통과되는 안이 많아질수록 효과가 커질 것”이라며 강조했다.